고려인이 본 원나라 모습
이글은 고려시대 중국 연경[베이징]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 이곡은 고려인으로서 원나라에서 벼슬을 오랫동안했다.
★가정집 [稼亭集] 고려 후기의 학자 이곡의 시문집.
가정집 제7권 / 설(說)
시사설(市肆說)
상고(商賈)가 모여서 있고 없는 것을 무역하는 곳을 시사(市肆)라고 한다.
처음에 내가 연경(燕京)에 와서 위항(委巷)에 들어가 보았더니, 예쁘게 치장하고서 간음하라고 가르치는 자가 그 용모의 고운 정도에 따라서 값을 올리고 내리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공공연히 거래하고 있었다. 이런 곳을 여사(女肆)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서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관부(官府)에 들어가 보았더니, 붓을 함부로 놀려 법규를 농락하는 자가 그 사건의 경중에 따라서 값을 올리고 내리면서 조금도 의구(疑懼)하는 마음이 없이 공공연히 거래하고 있었다. 이런 곳을 이사(吏肆)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서 형정(刑政)이 문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또 인사(人肆)를 보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홍수와 가뭄으로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진 나머지 강한 자는 도적이 되고 약한 자는 유리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입에 풀칠할 길이 없게 되자, 부모는 자식을 팔고 남편은 아내를 팔고 주인은 하인을 팔 목적으로, 저자에 늘어놓고는 헐값으로 흥정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개나 돼지만도 못한 짓이라고 할 것인데, 유사(有司)는 이런 일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아, 앞의 두 시장은 그 정상이 가증스러우니 통렬히 징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뒤의 한 시장은 그 정상이 가긍(可矜)스러우니 이 또한 빨리 없어지도록 조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시장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내가 알기에 여사로 인해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게 되고 이사로 인해 형정이 문란해지는 것이 장차 이 정도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주-D001] 예쁘게 …… 자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허술하게 보관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도적질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되며, 용모를 예쁘게 치장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음욕을 부추겨 간음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된다.〔慢藏誨盜 冶容誨淫〕”라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