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정조시대 까지 내려왔던 서적

afsefe 2022. 12. 26. 23:20

정조 5년에 보면 불에타 없어져서 거의 모아놓은 서책이 없다고한다. 그렇다면 지금 규장각의 서적들은 거의 정조이후 모아놓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규장각에 희귀서적이 없는것이다. 규장각에 있는 가장 유명한 도서는 북경에서 사온 고금도서집성 으로서 1만여권이나 되는 서책이다. 중국에서 완질로는 8부만 만들었다.

※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5월 16일 무자 1번째기사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심영조가 전란으로 대외에 흩어진 책자의 수색과 환수를 청하다

승지를 불러서 보았는데, 임금이 이르기를,

"열성조(列聖朝)[여러시대임금]에서 대대로 전하여 온 서적(書籍)이 수천·수만 권 정도뿐만이 아니었는데, 인종 조(仁宗朝)때 태반이 불에 타서 없어졌다. 그 뒤 경복궁의 화재 때 거의 다 타버렸고, 그 나머지 편질(編帙)들은 낙선당(樂善堂)으로 옮겨 놓았지만, 또 불에 타버려 단지 4만 권의 서책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갑신년[1764 영조 40년] 저승전(儲承殿)[창덕궁왕세자동궁]의 화재 때 또 불에 타버렸으므로 구질(舊帙)[옛서적]의 서적은 거의 완전한 책이 없으니, 이것이 안타깝다."

하니, 직제학 심염조(沈念祖)가 말하기를,

"강화 유수(江華留守)의 말을 듣건대, 대내(大內)에서 대대로 전해 오던 책자 가운데 밖으로 나간 것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선조(先朝)때 이숙번(李淑蕃)의 집에서 추납(推納)한 일에 의거하여 지금이라도 환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처(鄭妻)의 집에는 어필(御筆)과 책자가 많이 있다고 하니, 호조 낭관과 검서관을 보내어 즉시 수색하여 들여오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