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과 조선의 고아
한국근대사자료집성 16권 16권 프랑스외무부문서 6 조선Ⅵ·1893~1894 > 정치공문 1888~1896 조선 1893~1894 권 5 프랑댕 씨, 르페브르 씨 > 【31】 샬트르 성바오로 고아원의 지원 요청
제목
【31】 샬트르 성바오로 고아원의 지원 요청
문서번호
정치국 제59호
발신일
1893년 6월 5일 ( 1893년 06월05일 )
수신자
드벨, 등등
【31】 샬트르 성바오로 고아원의 지원 요청
조선 주재 프랑스 공화국 공관
정치국 제59호
서울,
1893년 6월 5일
서울의 프랑스 고아원 구호 요청
장관님,
본인은 서울 샬트르 성 바오로 고아원(l'orphelinat de St. Paul de Chartres)의 스타니슬라스(Stanislas) 원장 수녀가 본인에게 요청한 구호 요청서를 동봉하는 바입니다.
본인은 주저하지 않고 본 요청을 적극적으로 수락하였습니다. 사실 이 자선단체는 조선 정부뿐만 아니라 조선 백성 사이에 우리의 명성과 영향력을 드높이는 데 공헌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스타니슬라스 수녀에게 개인적으로 헌금을 보내기도 했으나 고아원이 필요로 하는 액수는 날로 늘어가고 있어 이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또한 서울의 가난은 매우 심각하다는 점도 첨언하고자 합니다.
경구.
H. 프랑댕
파리의 외무부 장관 드벨 각하께, 등등
◈ 별첨
1893년 6월 5일자 정치국 공문 제59호 첨부
서울의 수녀원장이 프랑댕 씨에게 보낸 서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1888년 7월 서울에 설립된 이래로 부모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아이들이나 부모가 지극히 가난하여 아이들을 양육할 수 없을 경우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래 통계는 지금까지의 결실을 보여줍니다.
고아원 설립 이래:
고아원에 수용된 아이 432명
부모에 되돌아간 아이 65명
결혼한 아이 18명
올 겨울 고아원에 들어온 아이 78명
현재 인원 169명
유모에게 맡겨진 아이 35명
이 정도의 인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중 고정 수입으로는 “성영회(Saint Enfance)[聖嬰會]”의 연간 수당 1만 프랑밖에 없습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어 지출이 더 늘었고 우리의 건강도 심하게 해쳤습니다. 주치의는 수녀들에게 환경을 가끔씩 바꿔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제물포에 새로운 집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이 계획이 실행될 수 있다면 서울과 제물포의 외국인들도 극진한 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독립된 방들도 마련하려 합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정부위원님과 정부위원님의 중재를 통해 감히 프랑스 정부에 자비심을 베풀어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자선을 베풀어주신 정부위원님과 프랑스 정부의 너그러움에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1893년 5월 18일
서명:스타니슬라스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