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와 봉선사
원각사 청기와
원각사 는 세조가 창건했지만 연산군 때 폐사되어 절을 허물어 버렸다.
1.) 세조실록 33권, 세조 10년 6월 12일 갑오 2번째기사 1464년 명 천순(天順) 8년
홍윤성을 불러 원각사 법당을 덮을 청기와에 대해서 논의하다
와요 제조(瓦窯提調) 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을 불러 원각사(圓覺寺) 법당(法堂)에 덮을 청기와[靑瓦]를 의논하니, 모두 8만 장(張)이라 구워서 만드는 데 들어가는 경비가 매우 컸었다.
봉선사 청기와
예종1년에 세조의 비 윤씨가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지금은 청기와가 없다.
2.) 성종실록 218권, 성종 19년 7월 17일 무인 3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윤민 등이 차자를 올려 유효손 등의 노비의 속공과 봉선사 보수에 관해 아뢰다
선왕(先王)[예종]이 원릉(園陵)곁에 절을 창건하여 이름을 봉선사(奉先寺)라고 하여 금벽(金碧)으로 꾸미고 청기와로 덮어서 만세에 썩지 아니하는 계책을 삼으셨는데, 예로부터 제왕(帝王)이 사찰로써 선조를 받들고 복을 구하는 곳으로 삼았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가령 말하기를, ‘이 절은 선왕을 위해 설치한 것이므로 청기와로 덮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한다면, 선왕의 능묘(陵廟)에도 오히려 청기와를 쓰지 아니하였는데 불사(佛寺)에 쓰는 것이 가하겠습니까? 그윽이 두렵건대, 선왕을 받드는 뜻이 사찰에 치우치게 중한 듯합니다. 이제 비록 헐어 없앨 수는 없더라도 어찌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허비하여 만들기 어려운 물건을 다시 만들어서 허물어지는 대로 따라서 수즙(修葺)하게 하여 아무런 보탬이 없는 불사를 사치하게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특별히 밝은 생각으로 유념하시어 성명(成命)을 빨리 거두소서."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이미 유시(諭示)하기를 자세히 하였는데 이처럼 번거롭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