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오직 주자학 뿐인 나라

afsefe 2023. 1. 4. 20:14

주자학은 고려후기에 들어온 학문이다. 그전까지 유학 , 사장학 , 불교 , 도학 여러학문이 공존하고있었다. 그러나 조선이 들어서고 오로지 주자학만 칭송할뿐이다. 처음 조선이 건국된후 그 조짐이 보였다. 오로지 주자학 뿐이라며, 사장학을 없애버리고, 불씨잡변을 써서 불교를 배척했다. 정통 유학은 주자학으로 덮어 씌워졌다. 그런데 왜 조선은 오로지 주자학인가 , 장유 는 조선인들이 소인배 들이라서 그렇다고 말하고있다. 

계곡만필 [谿谷漫筆] 1635년(인조 13) 장유가 지은 수필평론집.

계곡만필 제1권 [만필(漫筆)] 

[우리나라의 경직된 학풍[我國學風硬直]] 

중국의 학술은 다양하다. 정학(正學 유가(儒家)의 학문)이 있는가 하면 선학(禪學 불가(佛家)의 학문)과 단학(丹學 도가(道家)의 학문)이 있고, 정주(程朱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를 배우는가 하면 육씨(陸氏 상산(象山) 육구연(陸九淵))를 배우기도 하는 등 학문의 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식 무식을 막론하고 책을 끼고 다니며 글을 읽는 자들을 보면 모두가 정주(程朱)만을 칭송할 뿐 다른 학문에 종사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사습(士習)이 중국보다 실제로 훌륭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중국에는 학자가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학자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대체로 중국의 인재들은 그 지취(志趣)가 결코 녹록(碌碌)하지를 않아서, 이따금씩 큰 뜻을 품은 인사가 나오면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학문의 길에 매진하기 때문에, 그의 취향에 따라 학문의 성격은 서로 같지 않을지라도 각자 실제로 터득하는 바가 왕왕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를 못해서 기국(器局)[기량(재능과 도량)]이 워낙 좁아 구속을 받은 나머지 도대체 지기(志氣)[의지와 기개]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정주(程朱)의 학문이 세상에서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말을 얻어 듣고는 입으로 뇌까리고 겉모양으로만 높이는 척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 까닭에 소위 잡학(雜學)이라는 것조차 나올 여지가 없으니, 또한 어떻게 정학(正學) 방면에 소득이 있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이를 비유하자면, 땅을 개간하고 나서 씨를 뿌려야만 이삭이 패고 열매를 맺을 것이요, 그런 뒤에야 오곡(五穀)이니 제비(稊秕 돌피와 쭉정이) 뉘를 구별해 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말과 비틀어진 땅덩어리뿐인데, 거기에서 무엇을 오곡이라 하고 무엇을 제비라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