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와 비취 목사
그당시 세계에서 가장 더러웠던 나라였으니, 사람들은 1년 내내 목욕한번 안했고 대중 목욕탕 하나없었다.
1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한국사료총서 번역서1)>1891년(조선 개국 500년, 고종 28년, 신묘년)>10월>23일 《금요일》 추웠으나 아름다운 아침.
오전 9시에 휴 프라이즈 휴즈(Hugh Price Hughes) 목사가 대학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하였다.
오후 모임에서 여느 때처럼 램버드(Lambuth) 박사가 일본과 선교 사역에 대하여 성실함과 확신을 가지고 강연하였다. 램버드 박사 다음에 언더우드 목사가 조선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 다음 중국 선교지에서 돌아온 선교사이자 신학 박사인 비취(H. P. Beach) 목사가 짤막하게 이야기하였다.
말하는 가운데 비취는 더러운 조선 사람들에게 넌더리가 났다고 했다. 조선 사람들에 대한 이런 공격은 불필요한 것이다. 조선 사람이라고는 일꾼들 말고 전혀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당하지도 않은 비난이다. 필요하든 필요치 않던, 정당하든 정당치 않던, 그의 말로 인해 내 얼굴은 나도 모르게 불거졌고 모든 시선이 곧장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렇게 나의 온 영혼은 참혹한 고문을 겪었다!
신학박사요 목사인 이 사람은 다른 목적이 아니라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과 ‘재미삼아’ 조금 살아보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또 헌신적으로 섬겼는지를 자랑하기 위해 선교지로 가는 선교사들 중 한 사람이다.
온종일 비참하고 외롭고 우울하였다.
※언더우드 목사 (Horace Grant Underwood, 한국명 원두우, 1859~1916)는 1885년 4월 5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한국 교회를 성장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