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씨개명을 한 윤치호
윤치호는 이토지코 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다. 현재 사학계에서는 윤치호를 친일파로 분류 했기때문에 넙죽 창씨개명을 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윤치호는 창씨개명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애초에 창씨개명이 사학계에서 주장하는것처럼 강제적이었다면 고민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1). 창씨개명을 할지 회의를 열다.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40년(경진년)>1월
7일《일요일》 흐리고 쌀쌀함.
서울 집. 오후 3시 30분 사촌동생 치소와 치영, 그리고 내 동생 치왕과 치창과 함께 사촌동생 치오의 집에 모여 창씨개명에 관해 찬반논의를 했다. 치창, 치왕, 치오는 자녀들을 위해 창씨개명을 해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반면에 치영은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치소는 아직 입장을 정해지 못했다.
6시 30분쯤 치오의 집을 나섰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2). 결정하다.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40년(경진년)>5월>
22일《수요일》 맑음.
서울 집. 오전 9시 30분 경복궁 동편 광장에서 중학생 및 대학생 3만명 이상이 운집한 가운데 천황폐하께서 학생들의 충성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내리신 황국청년칙어 제정 2주년 축하식이 열렸다. 총독이 칙어를 낭독했다. 10시 30분에는 남학생들이 광화문통 끝에 있는 총독부 앞을 지나가며 시가행진을 했다.
오늘 오후에 툴주크 주스 6병이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받고는 깜짝 놀랐다. 내 평생 처음으로 총독에게서 받은 선물이다. 아무래도 미나미총독이 내가 창씨개명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읽고 기분이 좋았나 보지?
3). 창씨개명을 하다.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40년(경진년)>6월
17일《월요일》 흐렸다 개었다 오락가락.
서울 집. 오늘 오후 경성부청 인구조사과에 가서 우리 식구들의 성을 ‘이토’(伊東)로 바꾼 변경서를 제출했다. 오늘부터 내 이름은 일본식으로 이동치호(伊東致昊), 곧 이토 지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