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윤치호와 3 1운동

afsefe 2023. 2. 27. 20:03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3월>1일 토요일 화창한 날씨. 

1일 《토요일》 화창한 날씨.

YMCA에 출근했다. 오전 10시쯤 육정수 군이 한 말에 따르면, 박희도(朴熙道) 군이 자기 책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고,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며, 박희도의 태도가 매우 수상했던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야마가타 데이사부로 씨와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형사들이 YMCA회관에 와서 문건을 찾는다면서 사무실과 서랍을 샅샅이 뒤졌다. 1시 30분쯤 거리에서 군중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거리를 가득 메운 학생들과 시민들이 ‘만세’를 외치며 종로 광장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소년들은 모자와 손수건을 흔들었다. 이처럼 순진한 젊은이들이 애국심이라는 미명 아래 불을 보듯 훤한 위험을 향해 자진해서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우리는 골치 아픈 문제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회관을 완전히 봉쇄하기로 결정했다. 거리는 금방 군중 속에서 주동자들을 잡으려고 바삐 움직이는 군인·기마경찰·형사·헌병들로 가득 찼다. 모든 곳이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졌다.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의 내용은 굉장히 형편없는 것 같다. 손병희가 성공을 거두었다. 33인 중에는 남부 감리교 대표 3인, 북부 감리교 대표 4인, 불교계 대표 1인이 포함되어 있다.

註 025

: 33인 중 천도교 대표가 15명으로 종교계 중 가장 많은 수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