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노비 유분
조선 후기 노비 제도 https://iece12345.tistory.com/202
조선 후기 18세기 사회는 남자 노비는 영조의 공사천법으로 없어지고 여자노비만 남게된 사회다.
18세기 조선시대의 인물인 성대중(1732~1809)의 저서
청성잡기 제4권 성언(醒言)
파주 열녀 유분(有分) 이야기
파주 읍점(邑店)에 열녀 유분의 정문(旌門)이 있다. 지붕은 띠〔茅〕로 엮여 있고 붉은 글씨는 희끄무레해져서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는데 그대로 두었다가는 곧 썩어 무너질 것 같았다.
유분은 남의 집 종이었다. 어렸을 때에 그 조모를 따라 홍문(紅門) 아래에서 쉬다가 홍문을 세우는 이유를 묻자 조모가 대답하였다.
“효자와 충신, 열녀에게 관아에서 정문을 내릴 때는 이런 홍문을 세운단다.”
또 어떻게 해야 열녀라 하는지를 묻자 이렇게 일러 주었다.
“지아비가 죽어도 재가하지 않는 자를 열녀라고 한단다.”
유분은 한참 동안 결연하게 있었다.
훗날 시집을 가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어짊을 칭찬하였다. 마침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산기슭에 있는 밭에서 곡식을 베고 있었는데 흉악한 한 젊은 놈이 그녀의 모습에 반해서 겁탈하려고 덤벼들었다. 유분이 힘껏 그에게 저항하다가 흉기에 배를 찔렸다. 손으로 배를 움켜쥔 채 엉금엉금 기어 집으로 오니 그 어머니가 까닭을 묻고는 울면서 말하였다.
“너는 죽음이 두렵지도 않더냐? 왜 덤벼들었느냐?”
유분은 화를 내며 말하였다.
“제가 어찌 죽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움켜쥐고 있던 손을 배에서 떼니 창자가 밖으로 튀어나와 죽었다.
관가에서 그 나쁜 젊은 놈을 체포하여 죽이고 마을에 정문을 내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