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중국에 있었던 여자들의 나라

afsefe 2023. 5. 16. 21:38

이 성호사설 글을 보면 조선인들이 중국에 여자를 팔고 있다고 쓰인 글이 있다. 재밌는 점은 구한말 선교사글에도 보면 가난한 조선인들이 중국에다 자기딸을 팔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 전통은 북한으로 이어져서 북한에서도 중국에 자기딸을 팔고있다. 


★의무려(醫巫閭) -  광녕산(廣寧山)이라고도 함. 요동성(遼東省) 북진현(北鎭縣) 서쪽에 있음
★직방외기[ 職方外紀 ] 

1610년에 중국을 방문한 선교사 알레니가 저술한 이 책은 중국어로 쓰인 지리서
★달단(韃靼) - 몽고
성호이익 [李瀷] 1681(숙종 7)∼1763(영조 39).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사설 제1권  천지문(天地門) 
여국(女國) 
옛날부터 서쪽에 여국(女國)이 있다고 한다. 《직방외기(職方外紀)》에 보면, 다만 “달단(韃靼)의 서쪽에 옛날의 여국이 있었다. 그 나라 풍속에는 봄철에 남자 한 사람만이 그곳에 오는 것을 허용하였고 아들을 낳으면 죽여 버렸는데 지금은 다른 나라에 병합하고 그 명칭만 남아 있다.”고 하였으니 이 말이 가장 근사하다.
그러나 아들을 낳기만 하면 죽여 버렸다고 하니, 그럼, 봄철에 들어오는 남자는 반드시 다른 나라에서 빌려오는 것일 터인즉 이는 한때의 습속일 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보면, 중국 12주 가운데서 대체로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 주(州)가 많다. 예주(豫州)ㆍ청주(靑州)ㆍ연주(兗州)ㆍ병주(幷州)의 4주는 남자 2에 여자 3, 양주(揚州)는 남자 2에 여자 5, 형주(荊州)는 남자 1에 여자 2, 유주(幽州)는 남자 1에 여자 3의 비율이나 옹주(雍州)는 남자 3에 여자 2, 기주(冀州)는 남자 5에 여자 3의 비율로서, 대체로 옹주는 남자가 가장 많고 유주는 여자가 가장 많다. 그러나 유주는 요동의 요소이다. 그 산(山)은 의무려(醫巫閭)이고 그 소산물은 고기와 소금이다. 지금 들으면 그 지역에는 여자가 적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몰래 여자들을 그곳에 팔아넘기곤 한다고 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순(舜)이 기주ㆍ연주ㆍ청주ㆍ서주(徐州)ㆍ형주ㆍ양주ㆍ예주ㆍ양주(梁州)ㆍ옹주ㆍ유주ㆍ병주ㆍ영주(營州)의 12개 주를 설치하였는데, 우공(禹貢)에 와서 유주ㆍ병주ㆍ영주를 폐지하고 9주로 만들었고, 주관(周官)에 이르러는 서주ㆍ양주ㆍ여주를 폐지하고 유주와 병주를 첨가하였다. 남자와 여자가 많고 적은 문제도 그 가운데 있을 것인데, 그 여국은 북호(北胡)의 서쪽으로서 아세아(亞細亞)와 구라파(歐羅巴) 중앙에 끼여 있을 것이니, 생각건대 본래 여자가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풍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하다. 그러나 남녀의 정욕은 선천적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며, 이미 생식의 길을 열어 놓았으니 마침내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인데, 옛적에는 있었다가 지금은 없어졌다는 말이 믿을 만하다. 우리나라도 그 지역의 유주와 가까워서 본시 여자가 많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고려 충렬왕 때 대부경(大府卿) 박유(朴楡)가 상소하기를, “우리나라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데 계급이 높고 낮은 구별이 없이 아내를 한 명으로 제한하였고 아들이 없는 사람도 감히 첩을 두지 못하는데, 외국인으로서 입국하여 사는 자들에게는 제한 없이 아내를 얻게 하므로 신(臣)은 인물이 모두 북쪽으로 넘어갈까 염려되니, 관리들에게는 첩을 두도록 하되 그 계급에 따라서 그 수를 조정하여 일반 사람에게도 아내와 첩을 한 명씩 두게 하고 첩들이 낳은 자식도 나라에 벼슬할 수 있기를 적자(嫡子)와 다름없이 한다면 배우자를 잃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요, 사람도 흘러나가지 아니하여 인구가 날로 늘어날 것이다.”고 하자, 여자들이 이 말을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당시에 한 대신이 그 아내가 무서워 그 건의를 무시해 버렸다고 한다. 대부가 처첩을 두는 것은 법에서 금하지 않은 것인데 아마도 그때에 왕이 원(元) 나라 공주에게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듯하며, 조선에 들어와서는 서선(徐選)이 법을 세운 후부터 개가(改嫁)한 여자의 자손에 대하여 앞길을 막아 버렸다. 그러므로 양반집에서 과부가 되면 모두 죽을 때까지 수절하였고 천한 사람들도 이 풍속을 따라 개가하지 아니하였는데, 남자는 첩을 많이 두어도 금하지 아니하였으니 거의 사리에 맞는 듯하다. 또 듣건대, 경상도와 전라도 해변 지역에는 남편 없는 여자로서 나그네가 요구하면 쉽사리 얻을 수 있다 하여, 제주도에는 한 사람이 아내를 셋 내지 다섯까지 두는 사람이 있다 하니, 이것도 물[澤]이 가까운 곳에서는 여자가 많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