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송도의 명소 장유대

afsefe 2023. 7. 26. 18:12

바위 투성이 개울인 장유대는 개성의 유명한 곳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놀고있다. 

조선인들이 유명 관장지에다 지 이름 새겨 넣는건 100년전 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조선인들은 500년 동안 아무것도 안했고 일제시대에도 아무것도 안한 반면, 외국인들은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7월>30일《금요일》무더위.

30일 《금요일》 무더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전 11시 50분 기차로 서울을 떠나 송도 집으로 왔다. 거의 오후 □시에 송도 집에 도착했다. 어린 장선이한테 약간 열이 있다.

내가 장유대(帳幽台) 개울이라고 이름붙인 바위투성이 개울은 송도의 명소 가운데 하나다. 계곡 사이를 흐르고 흘러서 해운대 개울과 합류하는 장유대 개울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40여 일 동안 소풍을 나오거나 목욕을 하러 나온 남녀들이 음악을 틀어놓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흥겹게 놀아 그렇지 않았더라면 외로웠을 계곡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평균 하루에 이 계곡을 방문하는 사람은 적어도 100명이고, 한 사람당 하루에 적어도 3원 내지 5원씩 쓴다고 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한 해 여름에 40×100×3원=1,200원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10년이면 1만 2,000원이 된다. 지난 500년 동안 여름 휴양지인 이 계곡에서 송도 사람들이 60만 원 정도를 지출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수익을 올리면서도 1인치도 도로를 닦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개선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유용한 바위에 쓸데없이 이름을 새긴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제대로 급여도 받지 못하는 선교사 몇 명은 원산의 황폐한 모래해변을 환한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바꾸어놓았고, 원산에서부터 휴양지까지 습지와 모래사장을 관통하는 자동차 도로를 닦아놓았다. 조선인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결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단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인은 자신들이 독립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