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를 바치는 조선
주원장이 조교를 얼마나 잘해놨는지,
전쟁한번 없이 이정도 효과를 냈다는 건 정말 대단한 황제다.
이게다 조선 이씨왕조는 정당성, 정통성 없는 왕조라서 그런거다. 금은 조공, 처녀 고자 조공, 말 조공등 명나라 요구를 전부 들어주며 무리수를 두고 구걸하듯이 책봉을 받으면, 명나라 제후라는 막강한 후원을 얻을수 있다.
※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4월 16일 갑오 1번째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흠차 내사 황엄·전가화 등이 명의 칙서를 가지고 오다. 은과 비단을 보낸다는 내용
조정(朝廷)의 내사(內史) 황엄(黃儼)·전가화(田嘉禾)·해수(海壽)·한첩목아(韓帖木兒)와 상보사 상보(尙寶司尙寶) 기원(奇原) 등이 오니, 산붕(山棚)을 만들고 나례(儺禮)와 백희(百戲)를 베풀고, 임금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모화루(慕華樓)에서 영접하였다. 사신(使臣)이 경복궁(景福宮)에 이르러 칙서(勅書)를 선포하였다. 칙서에 이르기를,
"조선 국왕 이(李) 【휘(諱).】 에게 칙(勅)하노라. 취(取)해 보낸 말 3천 필은 이미 계속해 도착하였다. 지금 왕에게 화은(花銀) 40개(箇), 매개(每箇)의 중량(重量)이 25냥(兩) 합계 1천 냥과 저사(紵絲) 50필(匹), 소선라(素線羅) 50필(匹), 숙견(熟絹) 1백 필(匹)을 내려 준다."
하였다. 임금이 칙서(勅書)에 절하고 나서, 서계(西階)로 올라가 사신 앞에 나아가서 꿇어앉았다. 황엄이 성지(聖旨)를 선유(宣諭)하기를,
"네가 조선국(朝鮮國)에 가서 국왕(國王)에게 말하여, 잘 생긴 여자(女子)가 있으면 몇 명을 간택(揀擇)해 데리고 오라."
하였다. 임금이 고두(叩頭)하고 말하였다.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