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최우(崔瑀)가 만든 대형누각

afsefe 2022. 12. 19. 17:32

대루(大樓)는 거대이층 누각을 뜻하는것이다. 최우는 1천명이 앉을수 있는 거대 누각을 지었다. 고려사와 동국통감에도 쓰여있긴한데 너무 짧은 글이라 제대로 알수없다. 이규보의 글에 제대로 쓰여있어 그 규모를 알수있게 되었다. 이글에는 격구시합이 나온다. 격구는 조선에서 맥이 끊혔다. 세종시대에 선비들이 격구를 폐지하자는 말을 하기도 했다. 

 

동국이상국전집 제24권 / 기(記) 

최 승제(崔承制)의 대루기(大樓記) 

대저 양지에 있으면 기분이 느긋하고 음지에 있으면 마음이 쓸쓸하며 높은 곳에 있으면 속이 시원하고 낮은 곳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이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타고난 상정이다.

노자(老子)는,

“비록 화려한 집이 있더라도 설레지 않고 한가한 마음으로 초연하게 있다.”

하고,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고명(高明)한 데와 대사(臺榭)에 거처할 만하다.”

한 것은 대개 이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누대(樓臺)와 관사(觀榭)의 크고 작음과 번화하고 간소함은 또한 사람의 형세에 따라 각각 적당한 정도가 있다. 비록 지위가 같고 존귀함이 균등한 자에 있어서도 사람들의 촉망하는 바는 다르다. 사람들이 크게 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경우에 크게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옳게 여기지 않고 모두 정도에 지나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공이 많고 덕이 커서 명망이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온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 있는 자에 이르러서는 비록 그 집을 극도로 크게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사치스럽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좁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이제 승제(承制) 최공이 거대한 누각을 거실의 남쪽에 짓게 된 까닭이다.

누각 위는 손님 1천 명을 앉힐 수 있고 누각 아래는 수레 1백 대를 나란히 놓을 만하다. 그것은 새가 날아다니는 길을 끊을 만큼 높고 해와 달을 가릴 만큼 크다. 푸른 구슬로 꾸민 기둥에 옥신[玉舃]으로 밑을 받쳤으며, 양각(陽刻)한 말[馬]이 마룻대를 등에 짊어지고 머리를 치켜들어 끌어당긴다.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이 나무로 조각되어 그 자세를 나타내는 것은 건축이 생긴 이래로 아직까지 없었던 일이다.

《선경(仙經)》을 상고하니, 신선의 세계에 옥루(玉樓) 12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것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어서 그 집의 제도가 어떠하며 그 안에 어떤 기이한 광경이 있는지 알지 못하여 일찍이 이것을 한스럽게 여겼더니, 이 누각을 보매 비록 하늘에 있는 옥루도 아마 이보다 더 화려하지는 못하리라.

그 동쪽에는 불상을 안치한 감실(龕室)이 있다. 불사(佛事)를 행할 때면 곧 중들을 맞아들이는데, 그 수가 수백 명에 이르건만 장소는 오히려 여유가 있다. 누각 남쪽에는 격구장(擊毬場)을 설치하였는데, 길이가 무려 4백여 보나 되고 평탄하기가 숫돌 같으며, 주위에 담을 둘러쌓았는데, 수리에 뻗쳤다.

공이 일찍이 여가를 이용하여 손님들을 불러 호화스러운 연석을 벌이고 술을 마시다가, 기녀(妓女)들의 아름답고 고운 모습도 싫증이 나고 풍악 소리의 고조(高調)된 음률도 귀에 싫게 될 때에 보는 것을 상쾌하게 해 주고 기분을 시원스럽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공을 치고 말을 달리는 유희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왕량(王良 춘추시대 사람)과 조보(造父 주 목왕(周穆王) 때 사람)처럼 말 잘 타는 무리에게 명하여 날랜 말을 타게 한다. 빠르고 민첩하여 유성(流星)처럼 달아나고 번개처럼 움직인다. 동쪽으로 갈 듯하다가는 다시 서쪽으로 뛰고, 달릴 것처럼 하다가는 다시 머무른다. 사람들은 서로 손을 모으고 말들은 서로 말굽을 모은다. 뛰고 구르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사이에 서로 공을 다툰다. 비유하면 뭇 용이 갈기를 떨치고 발톱을 세워 큰 바다 속에서 한 개의 진주(眞珠)를 다투는 것과 같으니 아, 놀랄 만하다.

대저 공을 치고 말을 달리는 일은 평탄한 광장이나 넓은 평원이 아니면 적합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공은 홀로 그렇게 하지 않고 담을 둘러 쌓고 장랑(長廊)을 둘러 지은 그 속에서 놀이를 하게 하니 무슨 까닭인가? 무릇 넓은 평원이나 평탄한 광장에서는 비록 표주(標柱)를 세워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데도 오히려 규칙을 지키지 않고 벗어나 한계선을 넘는 자가 있다. 이것은 곧 땅이 국한되지 않고 마음이 단속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니 장무(墻廡) 안에 격구장을 설치하여, 빙빙 돌고 이리저리 달리면서도 그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땅이 국한되매 기술은 여유가 있고 마음이 단속되매 기교가 더욱 나온다. 이것이 공의 즐거워하는 바이다.

아, 누각이 비록 맞이하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온갖 경치가 이 누각에 나타남이 저러하고, 공이 비록 받고자 하지 않더라도 누각이 공에게 이바지함이 이와 같다. 모든 훌륭하고 특출한 풍경이 이 누각에 모였다. 나는 공의 측근에 있는 호사자들이 좋은 경치를 기록한 일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기고 공에게 청하여 현액(懸額)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