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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군밤장수와 고종

by afsefe 2023. 3. 31.

철종의 다섯아들 들은 전부 요절하여 후사없이 죽자 고종이 왕위에 올랐을때 아무것도 모르는 12살에 왕다운 교육도 못받은 아이 였다. 세도 정치 시기 아니였으면 왕조차 못될 입장이었으나 철종 때는 세도정치가 들이 일자무식 농부 하나 올려 세웠다면 고종은 동네에서 놀고있는 어린이 하나 올려세운 것이다. 고종은 혈통만으로도 따지자면 왕이 될수 없는 위치 였다. 세도 정치가들 입장에서 고종이 멍청하게 생기고 나이도 어리고 배운것도 없기때문에 이용해먹기 좋았을 것이고 철종 때는 일자무식 농부 하나 올려세워 놔서 이용해 먹기 좋았을것이다. 이게다 세도 정치가들이 지들 마음대로 할 음모였던 것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가계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로부터 파생되었다. 사도세자가 세자빈 혜경궁 홍씨에게서 얻은 아들이 정조 임금이고, 궁녀(숙빈 임씨, 경빈 박씨)에게서 얻은 아들 셋중 둘째 아들이 은신군이었다. 궁녀 아들 셋인 은신군, 은언군, 은전군 이들중 은신군은 후사가 없어 양자 를 들였는데, 그 양자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이다. 남연군은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의 6대손 이병원(李秉源)의 아들이다. 대원군은 남연군의 네 아들 가운데 막내였다. 고종은 혈통 만으로 따져봐도 전혀 임금이 될수없는 입장이었다. 

 

고종은 몰락한 왕가 후손으로 가난에 찌들어 살던 명복(고종의 어릴 적 이름)이 동네 애들과 연날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국왕으로 발탁돼 취임한 뒤 첫 지시가 누구를 죽이라는 것이었다.12세밖에 안 된 임금이 사형하라고 지목한 사람은 그의 동네 군밤장수였다. 군밤을 사먹을 돈이 없어 공짜로 좀 달라고 해도 주지 않자 벼르고 있다가 고종은 왕좌에 앉자 마자 제일성 한다는 말이 계동에 사는 군밤장수를 잡아다 죽이라는 것이었다. 이에놀란 대신들은 "전하가 지금 보위에 오르시어 성선(成善)의 덕으로써 정치를 하셔야 하는데 어찌해서 주살의 위엄을 먼저 보이십니까" 라며 황급히 제지했다. 그러자 고종은 내가 여러번 군밤을 하나 달라고 하였으나 그놈은 나에게 단 한 번도 군밤을 공짜로 주지 않았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신들은 이래서는 안되니 분부를 거두어 달라고 거듭 말했다.수렴청정을 한 조대비 또한 가세해서 만류했다. 임금이면 못 하는 게 없다는데 무슨 소리냐며 강경하던 고종도 신하와 조대비가 만류하니 포기는 했지만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 철처는 남가몽에 나와 있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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