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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15

윤치호가 말하는 과학 기술 윤치호 일기에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지금 이모양인가 지금하고 똑같다. 지금 조선놈들은 인문학 위주로만 하고있고. 과학 과 기술은 등한시하고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 다하고있는 지열발전도 제대로 할줄 몰라 포항을 그모양 그꼬라지로 만들었다. 박정희 당시 산업화도 조선놈들은 지들 힘으로 이룩한줄 안다. 이게다 역사왜곡과 미화 때문이다. 그저 옆나라 잘만난 덕분이다. 일본 기술 사라져봐라 어떤 꼬라지 될것인가 , 말이 반세기 걸리네 하고있지 정말 반세기 걸리면 국산화 할수있겠나, 그걸 누가 보증하나, 평생가도 일본기술 못따라잡는다.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10월 26일 《일요일》 화창한 날씨. 종교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양 목사가 훌륭한 설교를 했다... 2024. 3. 18.
조선에서 만든 비행기 조선말에 대원군의 지시로 비행기를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결과물은 원시시대에서나 나왔을 법한 아주 미개한 결과물 이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0월> 11일 《월요일》 화창한 날씨. 유고원과 함께 오전 11시 기차로 서울을 떠나 평택으로 향했다. 평택에서 신촌(新村)까지 줄곧 걸어가서 저녁 6시 무렵 집에 도착했다. 유고원이 병인년(1866년) 당시 학생이었을 때 대원군의 지시에 따라 비행기를 만들려고 시도하던 곳인 남별영(南別營)을 방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비행기 틀은 등나무로 황새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중심부에는 궁수와 명사수가 앉을 수 있도록 선반 같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거대한 날개는 새의 깃털로 덮여 있었는데, 깃털에 접착제를 발라 등.. 2023. 12. 24.
고려시대의 발명품들 1. 각궁 조선의 각궁은 고려시대 때 만들어 졌다 2. 편전 https://iece12345.tistory.com/442 편전은 활쏘기 기술중 하나로서 고려시대에 발명되었다. 3. 개성약과 약과는 대표 한과 다. 4. 목화 베틀과 물레 목화는 고려말 문익점이 가져와서 베틀과 물레도 발명되었다. 5. 금속활자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은 세계기록문화 유산이다. 6. 화약무기 고려말 최무선이 배워 왔다. 7. 도자기 기술 고려청자는 유명하다. 중국에서 배워온걸로 추정된다. 8. 배채법 배채법은 송나라에서 발명되어 고려에서 배워온 그림 기술로서 고려 미인도와 고려불화에 쓰였다. 조선에서는 개인 초상화에서만 이용되었다. 9. 고려인삼 2023. 11. 12.
윤치호 환경오염 서울 일제식민지 13년정도 지난 시점이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3년(계해년)>1월> 21일 《일요일》 흐리고 포근함. 서울 집이다. 올해 첫 비가 내렸다. 석탄 매연이 가득 낀 시내의 짙은 안개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공기가 오염되었다. 비가 내려 얼음이 조금씩 녹으면서 거리가 진흙탕길이 되었다. 교회 가는 길에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다. 가장 최악의 사태는 황산 같은 아내의 표독스런 성미 때문에 도저히 아내를 참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일들 때문에 오늘은 내가 겪어본 가장 불쾌한 날 가운데 하나다.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매력적인 아내가 아니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2023. 11. 12.
장영실의 업적들 실록과 야사를 보면 장영실이 만든것은 전부 세종이 가르쳐서 만든거라고 나와있다. 세종이란 인간이 이모양이니 진짜 한글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거다. 대동야승 해동야언 1 세종(世宗) 세종이 처음으로 아악(雅樂)을 제정하였는데, 중추부사 박연(朴堧)이 도와 이루어진 것이다. 박연은 앉아서나 누워서나 항상 손을 가슴에 얹어 악기를 다루는 시늉을 하고, 입으로는 휘파람을 불어 율려(律呂)의 성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10여 년 만에 비로소 이룩하였는데, 세종이 매우 중히 여겼다. ​세종은 또 자격루(自擊漏 시계의 한 가지)ㆍ간의대(簡儀臺 천문대)ㆍ흠경각(欽敬閣 물시계를 두었던 집)ㆍ앙부일구(仰釜日咎 해시계) 등을 만들었는데 제작이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였으며, 그것은 모두 임금의 재량에서 나온 것이다. 비.. 2023. 7. 17.
윤치호의 식민지 근대화론 500년동안 아무것도 한게없는 조선왕조 https://iece12345.tistory.com/333 여기에 쓰여있는 글을 보면 일제시대에 1. 농업이 발전했다. 2. 양반들만 글방에서 교육을 배웠는데, 일제시대에는 신분관계 없이 평등하게 교육을 배울 기회가 왔다. 3. 강에는 다리가 놓여지고, 길에는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외에도 최신 의료 시설과 공장들이 세워졌다. ​ 9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9(한국사료총서 번역서9)>1935년(을해년)>9월 29일《일요일》 사랑스런 날. 서울 집. 오늘이 숙모의 85회 생일이므로 우리는 역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 분은 조선에서 가장 복이 많은 여성 중 한 명이다. 조선에 일본 정부 설립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총독부 당국에 의.. 2023. 6. 27.
일제시대에 들어온 천일염 자염은 방법도 어렵고 생산량도 적어서 일제시대 천일염 기술이 보급되기 전까지 소금을 자급자족 하기도 어려웠다 천일염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며 태양염 또는 청염(淸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일염은 해수를 끌어들인 뒤에 바람과 햇볕으로 수분을 점차 증발시켜서 결정시킨 소금이다. 1920년대 말부터는 2억 근 이상의 천일염이 생산되었고, 한국산 소금의 주종이 천일염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자염의 명맥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다. 2023. 6. 18.
고려시대 충혜왕의 공장 한반도 중세시대에 100명 넘게 일했던 공장이 있었으니, 고려말 충혜왕의 신궁이다. 비단 제직 공장을 만들어서 여공 126명 일하게 했던게 중근세 시대 한반도에 있었던 유일한 공장이었다. 그외에는 조선에서 상공업을 억누르다 보니 가내수공업에서 발전을 못했다. 반면에 근세시대 일본에서는 수많은 공장이 만들어 졌다. 충혜왕의 신궁은 고려사 글로 보건데 비단 제직 공장이자, 정미공장으로 보여진다. 마지막에 궁인 126명을 추방했다고 하니 공장 여공은 126명일것이다. 충혜왕의 후비는 총 네명이다. 임씨는 마지막 네번째 ※ 고려사 충혜왕(忠惠王) 후비 4. 은천옹주(銀川翁主) 임씨(林氏) 은천옹주(銀川翁主)임씨(林氏)는 상인 임신(林信)의 딸로 단양대군(丹陽大君)의 여종이었다. 사기그릇을 팔아 생계를 삼다가 왕.. 2023. 4. 2.
조선말기 선비의 개혁조항 선비들이 조선 500년 내내 상공업을 억눌러야 된다고 그렇게나 말하다가 나라가 망할즘에 상공업을 발전 시켜야 된다고 말하고있다. 조선인들은 언제나 이렇게 뒷북이다. ※유학 [幼學] 벼슬을 하지 않은 유생(儒生)을 칭하는 말. ※賃船 [ 임선 ] 삯을 주고 배를 빌리어 씀. 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9월 20일 계묘 4번째기사 1882년 조선 개국(開國) 491년 군사 훈련과 상공업의 발전, 환곡 등에 관하여 조문이 상소하다 유학(幼學) 조문(趙汶)이 상소하여, 군사를 훈련시키고,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의학기술을 각국에서 배워 그 정묘한 기술을 취하고, 사치한 기풍을 억제하며, 호포(戶布)를 없애고, 조운(漕運)은 본읍(本邑)으로 하여금 임선(賃船)하여 자체로 바치게 하며, 환곡(還穀)에 대해서는 그.. 2023. 3. 31.
조선인 으로서의 산업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 > 1923년(계해년) > 9월 27일 《목요일》 화창하고 따뜻함. 송도 집이다. 많은 조선인들은 이렇게 넋두리를 한다.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모두 일본인 수중에 들어가 있고, 조선인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고 말이다.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 분야에 관한 한 정말이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농업·공업·상업 분야에서 조선인이 이윤을 남길 만한 활동 공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 역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근거는 이렇다. 일본인을 빼고 조선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다면, 중국인은 조선에서 농민으로서, 수공업자로서, 상인으로서, 날품팔이로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자본과 경험 부족으로 규모가 큰 사업을 경영할.. 2023. 3. 15.
윤치호와 심수관(沈壽官) 심수관은 도자기 가문을 이끄는 도예가를 뜻하는 거다. 조선에 있었으면 천민이라서 이름도 못남겼을텐데 일본에서 출세하여 이름도 남기고 출세했다. 그 후손들이 이름도 일본식으로 다 바꿨을정도면 끝난거다. 9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9(한국사료총서 번역서9)>1934년(갑술년)>12월>11일《화요일》 맑음. 11일《화요일》 맑음. 서울 집. 심수관(沈壽官)을 방문하였다. 그는 사쯔마의 봉건영주 시마츠에 의해 330년 전 가고시마에 포로로 잡혀간 50명의 기술자 가운데 한 사람의 13대 직계 후손이다. 자기 제조업자인 그 기술자들은 유명한 “사쯔마 도자기” 사업을 시작하였고, 지난 3세기 동안 그것을 지속해 왔다. 50명의 포로의 후손들은 오늘날 2,500명으로 성장하였다. 그 포로들은 지난 3세기 동안 자기들.. 2023. 2. 15.
털모자를 수입하는 조선 박지원은 양털이 없어 털모자를 못만든다고 하는데 방한용 모자는 목화 솜으로도 만들수 있다. 이정도 생각도 못하고 틀에 박힌 사고밖에 못하니 우스울 뿐이다. 가지고 간 은화의 절반을 털모자 수입하는데 썼다. 나머지 절반의 은화는 바늘 같은 생필품을 수입한다. 조선은 상공업이 발달못해 바늘같은 생필품도 수입해다 썼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일신수필(馹汛隨筆) 7월 15일 신묘(辛卯)에 시작하여 23일 기해(己亥)에 그쳤다. 모두 아흐레 동안이다.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해관(山海關) 안에 이르기까지 모두 5백 62리다. 22일 무술(戊戌) 우리나라에서 쓰는 털모자는 모두 이곳에서 만드는 것이다. 그 공장은 모두 셋이 있는데, 한 집이 적어도 30~40칸은 되며 거기서 일하는 공인은 모두 백 명이 넘는다. .. 2022.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