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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68

이성계의 황산대첩의 거짓 황산대첩 당시 일본은 내분을 겪어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때문에 살기가 힘들어진 일본의 일부 영주들은 무사들을 이끌고 고려나 중국 해안을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우왕 6년 왜군이 대선단 500여척을 타고왔고, 황산대첩 당시 말도 1천600필 이나 노획 했다고 하니 대군단에 상당수 기병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이 왜군의 적장이 15세에 백마를 타고 전신이 철갑으로 이루어져 있어 활공격도 끄덕 없고 힘도 장사라서 이 무시무시한 적을 막을자가 없어 이성계 휘하의 여진족 장수들도 피했을 정도로 강적이었다. 결국 이성계가 활로 투구를 쏘아 벗기고 이지란이 활을 쏘아 죽였다는데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 왜군 숫자도 이성계의 군단 보다 10배나 많았다고 적혀있다. 우선적으로 15세에 이정도 내공을 쌓을 수.. 2024. 2. 6.
거란전쟁 양규 장군 현대 한국인들이게 전혀 안알려져 있다가, 이번 드라마로 알려지게된 고려시대 위인, 근데 그도 그럴것이 고려시대 이순신 이라고 불리면 딱 맞겠다. 그래서 강감찬 같은 위인에게 가려져 있던게 아닌가, 이순신도 한국에서 전혀 안알려져 있다가 박정희가 자신의 군부 정권 찬양할려고 성웅화 시켜주며 띄워준거다. 거란 임금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공해서 강조가 이끌던 고려 30만 대군을 격파하고 개경을 함락 했다, 피난 중이던 고려 현종은 거란에 사신을 보내어 강화를 맺었고, 거란은 퇴군중에 양규 장군이 활약해서 싸웠다. 사로 잡혔던 고려 포로들을 구출하고 연전 연승을 거두면서 거란에게 데미지를 입히다가 마지막에 많은 화살을 맞고 죽었다. 이순신이 퇴군중인 왜군과 싸우다가 죽은것 처럼, 양규 장군도 물러나는.. 2024. 1. 9.
고려시대 손비서 저택 -祕書 [ 비서 ] 요직(要職)에 있는 사람에 직속하여 그의 기밀(機密) 사무(事務) 따위를 맡아보는 직위 ※동국이상국전집 제24권 / 기(記) 손 비서(孫祕書)의 냉천정기(冷泉亭記) 운대 아감(芸臺亞監) 비서성 소감(祕書省少監) 손군(孫君)이 성북(城北)의 어느 마을에 새 집을 지었다. 큰 바위가 있어서 높이가 두어 길이나 되며, 형상은 쇠를 깎아세운 듯이 험준하여 청사(廳事) 북쪽에서부터 동쪽 구석까지 창창하게 둘러 있다. 그 아래에 차가운 샘이 철철 흘러내려 고여서 깊은 웅덩이를 이루었는데 그 맑고 깨끗함이 실로 아낄 만하다. 청사 동쪽에 붙여서 작은 정자를 걸쳐 지었는데 10여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다. 맑고 깨끗함이 산재(山齋)와 같으니, 이것은 편안하게 노닐고 한가롭게 지내기 위한 곳이다. .. 2023. 12. 25.
아내를 여럿 두자는 박유(朴褕) 고려시대 여자인구가 많은 이유는 전쟁 때문이 아닌가, 박유는 여자인구가 많으니 아내를 여럿 두면 인구가 증가할거라 말하는데, 지금도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부유층에서 아내를 여럿두면 인구가 증가할것이다. 국역 고려사 : 열전 박유[ 朴褕 ] 박유(朴褕)는 충렬왕 때 대부경(大府卿)으로 있으면서 이런 이론을 세웠다. “동방(東方)은 목(木)에 속하니, 목(木)의 생수(生數)는 3이고 성수(成數)는 8이다. 그런데 홀수는 양(陽)이고 짝수는 음(陰)이니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 것은 그런 이치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건의를 올렸다. “우리나라는 본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데도 지금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처를 하나만 두고 있으며 자식이 없는 사람들도 감히 첩을 .. 2023. 12. 25.
고려의 일본정벌 당시 전함 ※ 국역 고려사 충렬왕 6년(1280) 11월 기유일. 우승지(右承旨) 조인규(趙仁規)와 대장군 인후(印侯)를 원나라에 보내 중서성(中書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전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병선 9백 척, 뱃사공과 선원 15,000명, 정규군 1만 명 및 중국 단위로 계산해 군량 11만 석을 마련했으며 기타 군수물자도 셀 수 없을 만큼 갖추었으니 이제 있는 힘을 다해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려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렬왕 6년(1280) 경진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 8. 3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충렬왕 7년(1281) 6월 임신일. 김방경(金方慶) 등이 일본군과 싸워 3백여 명의 목을 베었다. 이튿날 다시 벌어진 전투에서는 홍다구의 군대가 패전했다. 범문호(范文虎)도 전함(.. 2023. 12. 25.
고려 무신정권이 실패한 이유 서양이나 일본은 무신이 지배한 나라였다. 그런데 조선은 문신이 지배한 나라였는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무를 연마한 무신들이 책이나 보는 게 일과인 문신을 지배 못하다니, 더군다나 조선은 이성계 라는 무신이 세운 나라가 아닌가, 그러나 내 글을 쭉 읽어온 독자라면 조선 초기 이성계가 신하들에게 쪽도 못쓰며 굽신 거리는 걸 목격했을 거다. 더군다나 건국 개혁 및 모든 건 정도전 같은 문신들이 한 거다. 그래서 존 던컨이 쓴 조선왕조의 기원 이란 책을 보면 조선은 신하들이 세운 나라라고 말한 거다. 서양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은 다 무신이 지배 했지만, 조선은 문신이 지배했고 고려 무신정권은 왜 실패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문자다. 엄청나게 어려운 한자 때문에 고려 무신들은 다 문맹이라서 무신 정권을 .. 2023. 12. 24.
고려말 맹사성 고택 맹사성은 소 타고 다니고 청렴함으로 잘 알려진 인물, 저 집은 최영 장군이 살던 집으로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가 된 맹사성에게 그 집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물론 최영장군 또한 청렴함 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여러 번 개축되어서 본모습은 안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 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3. 12. 10.
고려 태평성세 청장관전서 제57권 / 앙엽기 4(盎葉記四) 고려(高麗)의 성세(盛世) 《익재집(益齋集)》 이제현(李薺賢)이 지었다. 에, “현종(顯宗) 상고하건대, 현종은 태조(太祖)의 제8자 욱(郁)의 아들인데 재위(在位) 22년이었다. ㆍ덕종(德宗) 상고하건대, 덕종은 현종의 태자(太子)인데 재위 3년이었다. ㆍ정종(靖宗) 상고하건대, 정종은 현종의 차자(次子)인데 재위 12년이었다. ㆍ문종(文宗) 상고하건대, 문종은 현종의 제3자로 재위 37년이었다. 은 아蒀지가 즉위하면 아들이 계승하고 형이 죽으면 아우가 뒤를 이어 전후 80년이었으니 성대한 시대라고 할 만하다.” 하였고, 《상촌집(象村集)》 신흠(申欽)이 지었다. 에, “현종(顯宗)으로부터 문종(文宗)에 이르기까지 거의 80년이다. 문종은 절검(節檢)에 힘쓰.. 2023. 11. 26.
고려시대의 발명품들 1. 각궁 조선의 각궁은 고려시대 때 만들어 졌다 2. 편전 https://iece12345.tistory.com/442 편전은 활쏘기 기술중 하나로서 고려시대에 발명되었다. 3. 개성약과 약과는 대표 한과 다. 4. 목화 베틀과 물레 목화는 고려말 문익점이 가져와서 베틀과 물레도 발명되었다. 5. 금속활자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은 세계기록문화 유산이다. 6. 화약무기 고려말 최무선이 배워 왔다. 7. 도자기 기술 고려청자는 유명하다. 중국에서 배워온걸로 추정된다. 8. 배채법 배채법은 송나라에서 발명되어 고려에서 배워온 그림 기술로서 고려 미인도와 고려불화에 쓰였다. 조선에서는 개인 초상화에서만 이용되었다. 9. 고려인삼 2023. 11. 12.
고려시대 편전(片箭) 고려 대몽항쟁때 김강신이 편전을 만들어 쏘았으니 그것이 한국 편전의 시초였다. 김강신이 중경유수를 지냈다는것 말고는 지금 자료가 없어 누군지는 알수없다. 그런데 편전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쏜건 아니고 서양에서도 편전을 만들어 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청장관전서 제55권 / 앙엽기 2(盎葉記二) 편전(片箭) 편전은 다만 우리나라에만 있다. 그래서 중국의 창이나 일본의 총과 함께 천하무적이 되었다. 상고하건대, 중경유수(中京留守) 김강신(金强伸)이 원병(元兵)에게 포위되어 병기가 다 떨어졌을 때 엽전으로 화살촉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원병의 화살 하나를 얻으면 넷으로 잘라서 통편(筒鞭)으로써 쏘았으니, 이것이 편전의 시초이다. 2023. 10. 16.
공민왕이 그린 염제신 초상화 이그림을 소개한 이유는 공민왕이 그린 초상화다. 이색이 쓴글에서 이를 확인할수있다. 염제신 장례는 삼일장으로 치뤘고, 공민왕이 직접그렸다는 글은 밑에 글에 쓰여있다. 유교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인물이고, 오히려 문신 이지만 여러 전쟁터에서 활약 한걸로 보아 문무에 능했다는걸 알수있다. 고려시대를 보면 전쟁이 많다보니 이런 인물들이 많았다. ​ 염제신 1304∼1382 동문선 제119권 / 비명(碑銘) 고려국 충경공 염공신도비 이색(李穡) 지금 임금 9년 임술년 3월에 태평재상(太平宰相)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이 나이 79세로 병드니, 공경대부들이 날마다 문 앞에 와서 경과를 물었으며, 자손들이 마루에 가득하게 모여 탕약을 받들었고, 위와 아래에 기도하여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임금은 중관(中官)을 보내어.. 2023. 10. 7.
사장학 시험 백자과 이색 은 성리학과 사장학 , 불교 전부 좋은 감정을 가주고 있었다. 그러나 소인배들이 조선을 건국 하는 바람에 오로지 성리학 뿐이고 불교와 사장학은 크게 쇠퇴했다. 100년만 지나도 언어는 변하는 법인데 한국어가 거칠고 투박한 이유는 사장학이 발전 못해서 그런것이다. 언어에서 성조는 다 사라지고 천박한 민족 답게 욕문화만 발달했다. 고려시대는 불교와 사장학이 주류였다. ※임하필기 제12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백자과(百字科) 이색(李穡)의 십운시(十韻詩)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백자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이 백자과를 통해서 진출한 자들이 많은데 열헌(悅軒) 조간(趙簡) 선생이 그중에서도 더욱 걸출한 분이다. 스스로 생각건대, 나 또한 신사년(1341.. 2023.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