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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113

윤치호가 말하는 과학 기술 윤치호 일기에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지금 이모양인가 지금하고 똑같다. 지금 조선놈들은 인문학 위주로만 하고있고. 과학 과 기술은 등한시하고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 다하고있는 지열발전도 제대로 할줄 몰라 포항을 그모양 그꼬라지로 만들었다. 박정희 당시 산업화도 조선놈들은 지들 힘으로 이룩한줄 안다. 이게다 역사왜곡과 미화 때문이다. 그저 옆나라 잘만난 덕분이다. 일본 기술 사라져봐라 어떤 꼬라지 될것인가 , 말이 반세기 걸리네 하고있지 정말 반세기 걸리면 국산화 할수있겠나, 그걸 누가 보증하나, 평생가도 일본기술 못따라잡는다.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10월 26일 《일요일》 화창한 날씨. 종교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양 목사가 훌륭한 설교를 했다... 2024. 3. 18.
일제시대 조선 거지들 구세군은 개신교의 한 교파다. 조선시대 때는 거지들이 있건 말건 상관도 안했는데 적어도 일제시대 때는 거지 아이들을 위하여 이런 구호사업이라도 벌어지지 않았나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1월> 20일 《월요일》 맑고 몹시 춥고 바람 붐. 섭씨 14도. 오전 11시부터 YMCA에서 근무했다. 2시부터 4시까지 흙먼지 바람이 불었다. 매서운 날씨다. 7시 30분에 교역자 간친회가 열렸다. 겨우 몇 사람만 참석했다. 구세군에서 일하는 장집(張執) 씨가 구세군이 버림받아 쓰레기통에서 살고 있는 소년들을 위해 시작한 구호사업에 대해 이렇게 간략히 설명했다. 지금까지 9세부터 16세까지 소년 26명을 대상으로 구호사업을 펼쳤다. 누더기를 걸친 아이들을 구세군 본부로 데.. 2024. 1. 20.
일제시대 유한익 목사 고문 유한익(1862~1940)은 군인 출신의 감리교 목사로, 주로 강원도 지방에서 목회활동을 벌였다. ​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 > 5월 24일 《월요일》 오전에 비가 조금 내리다가 맑게 갬. 오전에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다. 그런 다음 맑게 개어 화창한 날이 되었다. 유한익(劉漢翼) 목사를 YMCA회관으로 초대해 점심을 대접했다. 유한익 목사는 막 보석으로 풀려났다. 유 목사는 독립소요를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목사는 강원도 철원에서 경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 몽둥이로 등과 목덜미를 맞았고, 양쪽 뺨을 주먹으로 맞아 의치가 몇 개 부러졌다고 했다. 어떤 죄수들은 묶인 채 강제로 물을 마신 다음 엄청나게 얻어맞아 기절해 바닥에 쓰러졌다고 한다. 그 뒤 .. 2023. 12. 25.
조선에서 만든 비행기 조선말에 대원군의 지시로 비행기를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결과물은 원시시대에서나 나왔을 법한 아주 미개한 결과물 이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0월> 11일 《월요일》 화창한 날씨. 유고원과 함께 오전 11시 기차로 서울을 떠나 평택으로 향했다. 평택에서 신촌(新村)까지 줄곧 걸어가서 저녁 6시 무렵 집에 도착했다. 유고원이 병인년(1866년) 당시 학생이었을 때 대원군의 지시에 따라 비행기를 만들려고 시도하던 곳인 남별영(南別營)을 방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비행기 틀은 등나무로 황새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중심부에는 궁수와 명사수가 앉을 수 있도록 선반 같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거대한 날개는 새의 깃털로 덮여 있었는데, 깃털에 접착제를 발라 등.. 2023. 12. 24.
조선 최초 천연두 치료 종두법은 천연두 예방접종을 말한다. 최근에 원숭이 두창이 퍼지기도 했는데 보통 두창 이라고도 말한다. 지석영 註 066 : 조선 후기의 의사·문신·국문학자로 최초로 종두법을 도입했으며 의학교육사업과 한글 보급 및 연구에도 힘썼다. 1879년 부산의 제생의원(濟生醫院)에서 종두법을 배우고 충주 덕산면에서 40여 명에게 종두를 시술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실시된 최초의 종두로 알려져 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 > 1920년(경신년) > 5월 > 12일 《수요일》 화창한 날씨. YMCA 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말도 안 되는 미신에 사로잡힌 지운영 씨는 화가로서의 재능이 없었더라면 완전히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인물이다. 지운영 씨의 그림은 지금 어떤 조선인 화가의 .. 2023. 12. 24.
윤치호와 서산 대사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 > 1920년(경신년) > 5월 > 11일 《화요일》 화창한 날씨. 침대에 있는 벌레 때문에 간밤에 반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지운영 씨의 멋진 보금자리를 방문했다. 지운영 씨는 자신이 이름은 최운학(崔雲鶴)이고 별호는 휴정(休靜)인 유명한 승려 서산대사가 환생한 사람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 이 유명한 승려가 300년 전에 생존했을 때 어떤 소녀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서산대사는 그녀의 열정을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그 소녀의 영혼은 서산대사가 환생할 때마다 서산대사의 영혼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래서 지운영 씨는 지난 30년 동안 상처받은 소녀의 영혼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지운영 씨는 신의 계시에 의해서 2년 전, .. 2023. 12. 24.
글을 몰랐던 윤치호의 숙부 윤치호의 숙부는 한자를 전혀 몰랐다. 양반이라도 한자를 모르는 자가 제법 많았다는 걸 알수있다. 더군다나 양반 치곤 거지 처럼 살았던 가난뱅이 였다. ​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39년(기묘년)>11월 4일《토요일》 오전 흐림. 오후 맑음. 서울 집. 오늘 오후 4시 숙부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은 조선 제일의 행운아 중 하나다. 86년의 인생을 사는 동안, 이조 말의 참담한 실정(失政) 아래서나 한일합방 이후 철권통치 아래서 우리 선친과 내가 겪은 것 같은 불행과 고통을 전혀 겪지 않으셨다. 숙부는 학교 교육이라곤 받아본 일이 없으신 분이다. 한자만 적힌 편지는 읽지도 못하셨다. 글이라고는 아예 아무 것도 읽지 않으셨다. 하지만 너무나 건전한 상식과 진실성을 지녔기.. 2023. 12. 24.
윤치호 일제시대 토지강탈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 > 1921년(신유년) > 3월 > 26일 《토요일》 맑고 추움.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목욕을 했다. 일본인들은 민병석에게 뇌물을 주고 행궁(行宮) 안쪽에 있는 온천지역을 사들이자마자, 땅주인들에게 보상하겠다는 빈말조차 없이 온천 주변의 임야와 집터를 모두 강탈했다고 한다. 이 비열한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 일본인을 도와주고 부자가 된 작자는 바로 옛 탕지기(湯直)인 하□수(河□洙)라고 한다. 일본인이 조선인의 토지를 강탈하기 위해 애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총독부나 어느 큰 회사가 그 땅을 징발할 거라는 구실로 땅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것이다. 어리숙한 땅주인들은 왈칵 겁을 집어먹는다. 그런 다음 일본인은 조선인의 땅을 시세의 10분의 1 정도.. 2023. 11. 26.
윤치호와 유학자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 > 1919년(기미년) > 9월 > 30일 《화요일》 화창한 날씨. YMCA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 4시 30분에 에이비슨 박사의 자택에서 열리는 연희전문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석했다. 단정치 못함을 겉치레나 경솔함에 대한 철학적인 무시로 오인하거나, 구전 지식에 대한 고귀한 묵살로 오인하는 것이 유교학자들이 갖고 있는 악덕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전혀 앞날을 걱정하지 않아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집 없이 떠도는 비참한 고통으로 몰아넣는 사람들은 아무리 미덕을 갖추었다고 해도 전혀 존경할 수 없다. 자신이 조금만 노력한다면 가족들에게 안락한 집을 제공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악덕은 미덕으로 오해될 때 가장 위험하다. 2023. 11. 19.
뉴욕에 간 윤치호 맨 밑 11번 보면 민비 시해에 대하여 미국인들은 아무 관심도 없던 모양이다. 3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3(한국사료총서 번역서3) > 1896년(조선 개국 505년, 고종 33년, 병신년) > 5월 > 9일 《토요일》 뉴욕 그리고 루카니아호(S.S. Lucania)에서. 오후 1시에 배를 탔다. 뉴욕에서의 이런 저런 기억들. 1.내가 이 놀라운 도시를 방문한 일이 꿈만 같다. 브로드웨이, 현수교, 거대한 상점들, 훌륭한 철도, 호화로운 호텔, 아름다운 카페, 널리 알려진 센트럴 파크와 리버사이드, 그리고 송판 오두막집, 월드빌딩, 시끄럽고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의 거리, 상점과 거리와 역 그리고 서점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의 물결,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아주 놀라운 꿈과 같았다. 단지 내가 바랄 수 있는.. 2023. 11. 19.
윤치호와 일본여자 윤치호는 일본여자와 결혼했다면 훨씬 행복하게 살았을 것 오해 없도록 말하는데 1894년에 윤치호 아내는 마애방 중국여자 다. 여기에 나오는 늙은 하녀또한 청국의 중국여자다. 윤치호 아내 마애방은 1905년에 아이를 낳다 죽었고, 그후 재혼한 여자가 그 성질 더러운 조선여자 백매려다. 2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2(한국사료총서 번역서2) > 1894년(조선 개국 503년, 고종 31년, 갑오년) > 7월 19일 《목요일》 산들 바람 부는 더운 날. 오늘 아침 『데일리 뉴스』에서 조선의 한성 주재 영국 영사와 그의 부인이 하루 이틀 전 큰길에서 한 무리의 일본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전보를 전하였다. 일본인들은 가끔 바보 같다! 영국은 이미 중국의 큰 우방으로서 일본이 그런 식으로 해쳐서는 안 된다. 중국.. 2023. 11. 19.
윤치호의 걱정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 > 1938년(무인년) > 11월 12일《토요일》 청명. 매우 추움. 서울 집. 나와 알렌이 갚아주어야 하는 광선의 막대한 빚때문에 걱정이다. 광현이 아직 서대문경찰서의 수중에 있어 불안하다. 정재흡이 광선, 치왕, 치창과 또 다른 사람들에게서 악랄하게 강도질한 행위가 서대문경찰서에 의해 조사되고 있고, 그들이 참이건 거짓이건 사에키씨에게 돈을 주었다고 자백함으로써 사에키는 부윤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걱정이다. 화재로 무너진 점포들을 새로 지을 일도 걱정이다. 전시(戰時)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요즘 제반 정세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이 모든 근심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여기에 덧붙여 아내 마저도 정나미가 떨어지는데, 나뿐만 아니.. 2023.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