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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33

이성계의 발언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6월 16일 갑신 1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그윽이 생각하건대, 신의 선대는 본래 조선의 후예이며, 신의 22대조 이한(李翰)은 신라 시대에 사공(司空) 벼슬을 했고, 2023. 10. 23.
이성계 일어서서 조회를 받다 ★조회朝會 - 백관(百官)이 임금을 뵙기 위(爲)해 모이던 일 ,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8월 11일 경신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처음으로 신하들의 조회를 앉아서 받다 임금이 여러 신하들의 조회를 앉아서 받았다. 왕위에 오른 이후로 겸양(謙讓)으로써 조회를 받을 적에는 반드시 섰었는데, 이날에는 여러 신하들이 땅에 엎드려 〈앉아서 받기를〉 굳이 청하므로, 이에 앉았다. ------------------------------------------- 이성계는 왕이되고 1년가량 신하들이 오면 발딱 일어서서 "오셨습니까" 하며 굽신 거렸다. 왕으로서의 위엄이 전혀없다. 왜냐하면 조선은 신하들이 건국한 나라다. 건국 개혁도 보면 전부다 정도전 머리에서 나온거다. 그냥 이성계는 신하들이 시.. 2023. 10. 5.
조선의 강리도(疆理圖)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 조선 태종(太宗) 2년(1402년)에 제작된 세계 지도이다. 원본은 조선에 없고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명나라 지도를 요구해서 약탈당해 일본에 있다. 이 지도가 완성되기 까지는 그전 고려시대에 원나라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를 수입했고, 성교광피도는 그 광대한 제국을 세웠던 원나라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성교광피도가 제작될수 있었던 것이다. 어디까지가 원나라의 성교광피도를 참고 했다보니 1398년 명나라(明國)에서 제작한 세계지도 대명혼일도(大明混一圖)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띠고있다. 대명혼일도 또한 원나라의 성교광피도를 참고 했다. 이 강리도는 조선에서 제작했다지만 어디까지나 고려의 힘이 있었고 원나라의 힘이 있었다. 여말선초시기 였으니 제작할수 있었던 것 뿐.. 2023. 9. 17.
신참례 1 정윤화의 죽음 조선시대에는 신입이 오면 기강(紀綱)을 잡는다며 괴롭히는 문화인 신참례 문화가 있었다. 재밌는점은 이 신참례 문화가 지금은 똥군기 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참으로 안좋은건 안없어지는 구나 단종실록 7권, 단종 1년 9월 19일 임신 3번째기사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강폭과 신자교·신의경 등을 새로 급제한 정윤화를 죽게 한 죄로 파직시키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행승문원박사(行承文院博士) 강폭(姜幅)·신자교(申子橋), 저작(著作) 윤필상(尹弼商), 정자(正字) 권징(權徵)·신의경(辛義卿), 부정자(副正字) 권제(權悌) 등이 새로 급제(及第)한 정윤화(鄭允和) 등 10인으로 하여금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이바지하게 하고, 인하여 희롱하고 침핍(侵逼)하였는데, 정윤화.. 2023. 8. 24.
조선의 나이 서열 문화 현대 사회의 병폐인 나이 서열문화, 윗사람에게 예의가 없으면 싸가지 없다 라고 하며 윗사람에게 예의와 복종을 강요한다. 한국은 상명하복 , 위계질서 , 권위주의 , 언어로는 존비어가 아주 개같이 잘잡혀 있다, 문화적으로도 나이 많은 사람의 명령대로 따르기만 하고 나이 많은 사람한테 비판도 못한다 , 이때문에 조선인들 끼리 한두살 차이만 나도 서로 위로 올라가 압제할려고 개같이 물고 늘어지기만 하는 쓰레기 민족이다. 조선시대 자료를 찾아보면 나이 서열 문화를 엄하게 다스리는 내용이 있다. 한국의 문화가 다 어디서 왔겠는가, 실록을 보면 나이많은 사람이 잘못해도 능멸 하지 말라고 주입하고 있다, 현대 한국의 병신같은 문화를 이룩했다고 보면된다. 나이많은 사람이 아무리 병신 찐따 같은 놈이라도 비방하면 안된다.. 2023. 8. 24.
정도전의 죽음 태조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8월 26일(기사) 제1차 왕자의 난.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숙청되다 정도전과 남은 등은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고자 하여 어린 서자(庶子)를 꼭 세자(世子)로 세우려고 하였다. 정도전과 남은 등은 등불을 밝히고 모여 앉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근 등이 지게문을 엿보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화살 세 개가 잇달아 지붕 기와에 떨어져서 소리가 났다. 소근 등이 도로 동구(洞口)로 나와서 화살이 어디서 왔는가를 물으니, 숙번이 말하였다. “내가 쏜 화살이다.” ​ 소근 등으로 하여금 도로 들어가 그 집을 포위하고 그 이웃집 세 곳에 불을 지르게 하니, 정도전 등은 모두 도망하여 숨었으나, 심효생·이근(李懃)·장지화 등은 모두 살해를 당하였다... 2023. 8. 16.
장녹수 열전 1. 요녀 장녹수 - 원래는 창녀였고 , 얼굴은 동안에, 춤과 노래를 잘했다. 연산 8년(1502 임술 / 명 홍치(弘治) 15년) 11월 25일(갑오) 김효손(金孝孫)을 사정(司正)으로 삼았다. 김효손은 장녹수(張綠水)의 형부이고, 장녹수는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 2023. 7. 4.
조선 연산군의 묘 ★외예 - 외가후손 임하필기 제26권 / 춘명일사(春明逸史) 폐조(廢朝)의 분묘 연산군(燕山君)의 묘는 양주(楊州)의 해등촌(海等村)에 있는데, 그 외예(外裔)가 서로 전하여 수호해 온 것이다. 아직껏 예전의 곤룡포가 묘사(墓舍)에 소장되어 있고, 매년 가을마다 무격(巫覡)으로 하여금 푸닥거리를 하도록 하는 일이 곧 연례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젊었을 때 동서(東墅)에서 독서하면서 일찍이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의식이 매우 외설스러워 못 하게 금하려고 생각하였으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간하기에 그만두었다. 광해군(光海君)의 묘도 같은 현(縣)의 적성동(赤城洞)에 있다. 2023. 6. 24.
연산군 술먹고 놀다 -進宴 [ 진연 ]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 궁중(宮中)에서 베풀던 잔치 -공궤 [供饋] 음식물을 나누어 줌 ※연산군일기 61권, 연산 12년 2월 4일 갑인 1번째기사 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대비에게 진연하고 빈의 친족을 공궤하다. 술에 취하여 희롱하며 놀다 왕이 경복궁에 납시어 대비에게 진연(進宴)을 하고, 명하여 승정원과 빈(嬪)의 친족을 공궤하였다. 그리고 친히 김감(金勘)·김수동(金壽童)과 승지 등을 내전으로 인견(引見)하고 술을 내렸다. 왕이 술이 취하여 희롱하며 춤추는 것이 배우[優人] 같았으며, 명하여 김준손(金俊孫)의 모자를 벗기고 머리를 두드리게 하였으니, 준손은 나이 늙어 머리가 벗어졌으므로 희롱한 것이다. 밤중이 되어 모두 취하여 붙들고 나갔다. 2023. 6. 21.
방탕했던 어우동(於于同) 성종시절 행실이 방탕하여 여러남자들과 관계를 하였는데 유교문화권에서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교형에 처해졌다. 용재총화 제5권 ○ 어우동(於于同)은 지승문(知承文) 박 선생의 딸이다. 그녀는 집에 돈이 많고 자색이 있었으나, 성품이 방탕하고 바르지 못하여 종실(宗室) 태강(泰江) 군수의 아내가 된 뒤에도 군수가 막지 못하였다. 어느 날 나이 젊고 훤칠한 장인을 불러 은그릇을 만들었다. 그녀는 이를 기뻐하여 매양 남편이 나가고 나면 계집종의 옷을 입고 장인의 옆에 앉아서 그릇 만드는 정묘한 솜씨를 칭찬하더니, 드디어 내실로 이끌어 들여 날마다 마음대로 음탕한 짓을 하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몰래 숨기곤 하였다. 그의 남편은 자세한 사정을 알고 마침내 어우동을 내쫓아 버렸다. 그 여자는 이로부터 방자한 행동.. 2023. 6. 17.
조선의 경복궁 이름 고려시대 경복궁 https://iece12345.tistory.com/268 최근에 서울에서 고려시대 궁궐터가 발견되었다. 고려시대는 수도가 세개나 있었기 때문에 현재 안알려진 고려시대 궁궐들이 많다. 조선의 경복궁 이름또한 원래는 고려시대 궁궐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거다. 그러나 새 나라를 건국 하고서 대표 궁궐 이름을 짓는다면서 그전에 있던 궁궐 이름을 그대로 갖다쓴건 웃긴일이다. 그것도 지들이 그렇게 부정했던 고려시대를 말이다. 근데 이글의 셋째줄을 보면 그전에 있던 궁궐 이름을 고쳐부르거나 그대로 갖다 쓰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라고 쓰여있다. 이말을 볼때 경복궁 이란 이름을 일부러 그대로 갖다 쓴걸로 보인다. 고쳐 부른 사례를 보면 광해군때 지은 경희궁도 고려 궁궐 이름에서 한자만 고쳐쓴거다. 그.. 2023. 6. 7.
중국에 억만년 충성을 맹세하다 조선이 건국한후 중국에 말 60필을 바치면서 억만년동안 조공 하겠다고 충성을 맹세했다. 태조 2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洪武) 25년) 10월 25일(계유) 정도전이 명나라에 가지고 간 황제의 덕을 칭송하는 표문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정도전(鄭道傳)을 보내어 중국 남경[京師]에 가서 사은(謝恩)하고 말 60필을 바치게 하였다. 그 표문(表文)은 이러하였다. “배신(陪臣) 조반(趙胖)이 남경에서 돌아와 예부(禮部)의 차자(箚子)를 가지고 와서 삼가 황제의 칙지(勅旨)를 받았는데, 고유(誥諭)하심이 간절하고 지극하셨습니다. 신은 온 나라 신민과 더불어 감격함을 이길 수 없는 것은 황제의 훈계가 친절하고 황제의 은혜가 넓고 깊으시기 때문입니다. 몸을 어루만지면서 감격함을 느끼고 온 나라.. 2023.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