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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15

얼차려 중대장 고문 최근 얼차려 중대장한테 지옥 고문을 당하고 20대 군인이 죽었다. 참고로 이와 같은 일은 그전에도 있었던 걸로 안다. 그러나 서양 군인은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상급자가 틀렸으면 그냥 쏴 죽인다. 근데 정부에서는 한국인들이 고분 고분 말 잘듣는거 보고 군대 때문이라고 사기치고 있다. 생각해 봐라 죽을 정도로 고문을 당하는데 왜 명령대로 따르는가, 애초에 이건 유교 때문인데 조선 선비들과 이씨왕이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려고 유교를 이용한거다. 한국인들은 유교에 세뇌된 노예들이다. 2024. 6. 4.
세종시대 굶주림으로 흙을 먹다 ※세종실록 19권, 세종 5년 3월 13일 갑오 6번째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함길도 화주에 빛깔과 성질이 밀과 같은 흙으로 음식을 만들어 굶주림을 면하다 함길도의 화주(和州)에 흙이 있는데, 빛깔과 성질이 밀[蠟]과 같았다. 굶주린 백성들이 이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으매,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는데, 그 맛은 메밀[蕎麥] 음식과 비슷하였다. ※세종실록 104권, 세종 26년 4월 24일 계묘 2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지인 박사분을 황해도에 보내어 흉년으로 흙을 파먹는다는 말을 확인하도록 하다 임금이 황해도에 흉년이 들어 인민들이 모두 흙을 파서 먹는다는 말을 듣고, 지인(知印) 박사분(朴思賁)을 보내어 가서 알아보게 하였더니, 이때에 와서 사분이 회계(回啓)하기를.. 2024. 2. 4.
조선의 가난한 백성 본문 내용은 선조 16년 1583년 일이다. 임진왜란은 선조 25년 1592년 이니간 전쟁때문에 못살아서 그런게 아니다. 원래가 처참한 나라였다. 대동야승 송와잡설(松窩雜說) 송와잡설(松窩雜說) 이기(李墍) 찬 ○ 통천군(通川郡) 읍내에 가난한 백성이 있었다. 겨울에도 입은 것이라고는 다만 묵은 솜과 해진 굵은 베옷뿐이었다. 소를 몰고 추지령(楸池嶺) 밑에 나무하러 갔는데, 마침 그날은 풍설이 너무도 차가웠다. 날이 저물자, 몰고 갔던 소가 빈 길마로 홀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깜짝 놀라서 몹쓸 짐승에게 해를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달려가 찾았다. 중대(中臺) 길에 이르니, 그의 남편은 동상(凍傷)을 입고, 눈 위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내는 곧 옷을 벗고 가슴을 맞대어 안고 누웠다. 혹시 다.. 2023. 12. 3.
소설 홍길동전 세종시대 소설 홍길동전 시대배경을 보면 조선국 세종대왕 즉위 15년 - 이라고 써있다. 실제로 홍길동은 연산군때 활동한 의적이었지만 정작 허균이 쓴 소설 홍길동전은 세종시대가 시대배경이다. 사학계에서 미화해서 그렇지 세종시대는 암흑기 였다, 명화적 같은 도적도 많았고, 기근이 일어나서 인육을 먹고, 먹을게 없어서 흙파먹고, 중국에 금은 조공에, 소 1만마리 조공에, 말조공에, 처녀조공에, 고자조공에, 한자 음독화로 한국어 말살정책에, 노비 종모법에 정작 한글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허균은 세종시대를 암흑기로 보고 있었다. 현대 사학계에서 이미지 마케팅으로 암군을 성군으로 포장 가능한지 잘 보여주다. 세종은 외교도 무능한 왕이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 2023. 10. 26.
지옥보다 더 나쁜 곳 2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2(한국사료총서 번역서2)>1893년(조선개국 502년, 고종 30년, 계사년)>11월 4일 《토요일》 도쿄, 요코하마 그리고 기차 여행. 아침 8시 가히 상이 도쿄 호텔 양식당으로 유형로와 나를 데리고 갔다. 보잘 것 없는 음식인데도 일인당 50전을 지불했다. 김옥균은 11월 14일까지 도쿄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내 정신 상태와 신앙이 나태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곧 도쿄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김옥균은 조선은 지옥보다 더 나쁜 곳이라고 했다. 지옥에서는 법에 따라 사람이 심판을 받지만 조선에서는 이유와 공의에 관계없이 고문하고 사형시키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40분 기차를 타고 도쿄를 출발했다. 가히 상은 신바시역으로 나를 친절하게 바래다주었다. 고베로 .. 2023. 9. 16.
광무태황제를 추억하며 이글을 통해 조선 이란 나라가 얼마나 지옥같은 나라였는지 잘 알수 있을것이다. 근데 읽어보면 구한말만 이랬던건 아니다. 도적이야 조선 500년 내내 들끓었고 수탈도 심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0월>29일 금요일 화창한 날씨. 29일 《금요일》 화창한 날씨. 기침이 낫지 않아 여전히 누워 있다. 때때로 광무태황제가 지난 14년 동안 황제자리에 있었더라면 조선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조선인들은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재미있어진다. 1.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광무태황제의 궁궐과 조정은 이용익(李容翊)·이지용(李址鎔)·민영철(閔泳喆) 같은 가장 야비하고 잔인하고 가증스런 악당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2. 전국에 도.. 2023. 7. 2.
조선시대 거지들 2 기근이 들어 유랑민 부녀자들이 구걸 하고 다니고 있다 중종실록 27권, 중종 12년 2월 25일 신미 4번째기사 1517년 명 정덕(正德) 12년 매를 부원군·삼공·홍문관원 중 늙은 부모가 있는 사람에게 내리도록 명하다 매를, 부원군(府院君)·삼공·홍문관 원(弘文館員) 중 늙은 어버이 있는 사람에게 내리도록 명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중앙에는 진휼청(賑恤廳)을 두고 외방에는 진휼사(賑恤使)를 보냈지만, 구휼(救恤)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유랑하는 백성이 서로 잇달고 굶어죽은 사람이 이미 많으며, 황해도에서는 부녀자들이 마을로 구걸다니기까지 하는데, 쓸데없는 공상을 없애지 않고, 각도에 매와 사냥개를 진상하도록 하여 대궐 뜰에 벌여놓음은 무슨 일이었을까? 2023. 6. 4.
조선후기 평민들의 가난 18세기 말에 포천에서 현령을 지낸 실학자 박제가[朴齊家](1750~1850)는 당시 농민의 극심한 가난과 그 원인을 이렇게 전한다. ​ 그들은 화전을 일구고 나무를 하느라 열 손가락 모두 뭉툭하게 못이 박혀있었지만, 입고있는 옷이라고 해야 십년묵은 헤진 솜옷에 불과했고, 집이라고 해봐야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는 움막에 지나지 않았다. 먹는 것이라고는 깨진 주발에 담긴 밥과 간도 하지않은 나물뿐이었고, 부엌에는 나무젖가락만 달랑 놓여있고, 아궁이에는 질항아리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이유는 간단했다. 무쇠솥과 놋수저는 이정(里正)이 이미 몇차례나 빼앗아 갔고, 군포(軍布)대신에 동전 2.5~2.6냥씩을 해마다 납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 박제가 [북학의] ​ 두얼굴의 조선사 - 글항아리 2023. 5. 31.
일제시대 노인 2023. 5. 28.
조선시대 국민 부채뜯기 3 조선 시대 국민 부채뜯기 2 https://iece12345.tistory.com/266 조선 숙종시절 송시열은 임금에게 국민들 때려가며 부채(負債)뜯지 말라고 진언하고 있다. 송시열의 백성을 생각하는 민본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글에서는 수령 보다는 진실로 나쁜 인간은 임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 부채 뜯기 2번 글을 보면 정조는 형벌을 최소한으로 하고 박하게 세금을 걷어라 라고 압박하는 내용를 볼수있는데 다 위에서 시킨거다. 송시열 조선 숙종 때의 문신 (1607~1689) 송자대전 제19권 소(疏) 성덕(聖德)을 진계(陳戒)하면서 홍수주(洪受疇)의 찬벌(竄罰)을 논하는 소 을축년 12월 맹자는 전국(戰國) 시대(時代)에 살았지만 당시 임금에게 진언한 말은 백성을 보호하라는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 2023. 4. 16.
조선후기 국민 부채뜯기 2 조선시대 국민 부채뜯기 https://iece12345.tistory.com/263 조선시대는 가뭄이 들어 그해 국민이 세금을 못내면 그 세금은 개인 부채(負債)로 쌓이는 구조다. 근데 그 부채를 받아내는 일은 엄청 잔혹 했으니, 고문 하거나 곤장을 때렸다. ※撫育 [ 무육 ]-(윗사람이)잘 돌보아 사랑하여 기름 ※지성(至誠)-지극한 정성 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7월 1일 신축 1번째기사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임금으로서 지켜야 할 아홉 조항을 아뢴 형조 참의 이상정의 상소문 가을에 수확하는 데 이르러서는 공사(公私)의 부채(負債)를 좌우에서 독촉하는가 하면 왕왕 형틀에 묶여 매를 맞는 횡액을 면치 못하기 일쑤입니다. 그리하여 소를 팔고 솥을 팔아서 그 화(禍)를 요행히 면하게 되는데, .. 2023. 4. 12.
조선시대 국민 부채 뜯기 조선은 가뭄이 들어 그해 국민이 세금을 못내면 그 세금은 개인 부채(負債)로 쌓이는 구조다. 근데 그 부채를 받아내는 일은 엄청 잔혹 했으니, 고문 하거나 곤장을 때렸다. 효종실록 16권, 효종 7년 6월 18일 을미 1656년 청 순치(順治) 13년 간원이 민폐를 끼친 청평위 집의 차지 내관 정응성의 일을 아뢰다 간원이 아뢰기를, "근래 제궁가(諸宮家)의 차지 내관(次知內官)이 연줄을 타고 폐단을 만드는 것은 그 단서가 한둘이 아니지만 빚을 징수하는 일이 더욱 민폐가 되니, 이것이 어찌 성세(聖世)에 있을 일이겠습니까. 청평위(靑平尉) 집의 차지 내관 정응성(鄭應星)은 부채(負債)를 이유로 상놈 한 사람을 포박하여 사적으로 몹시 잔혹하게 고문하였는데, 그 사람의 늙은 아비가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을 차마.. 2023.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