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12 조선 명종시대에 사라진 신사(神祀) 이 실록 기사글을 보면 여자들이 신사에 가서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유생들이 몽땅 다 불태워버려서 원래 일본처럼 신사가 맡고 있었던 기복신앙은 불교로 돌아가게 되어 여자들이 사찰에 가서 소원을 빌게된다. ※ 제·양(齊梁) : 남조(南朝) 시대. ※ 무지개[螮蝀] : 사기(邪氣)를 뜻함. ※ 사녀(士女) - 선비의 아내 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 1월 26일 무오 5번째기사 1566년 명 가정(嘉靖) 45년 윤의중 등이 개성부의 유생을 나추하지 말 것을 상차하다 홍문관 부제학 윤의중(尹毅中) 등이 상차하기를, "세교가 밝지 못하면서부터 인심이 괴이한 것을 좋아하여 산꼭대기나 물 구비에 많은 음사를 지어 놓고 귀신을 숭배하는 풍속이 마치 제·양(齊梁)의 비루함과 같으니 이 비록 민속의 이미 고질화한 .. 2024. 2. 4. 윤치호와 서산 대사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 > 1920년(경신년) > 5월 > 11일 《화요일》 화창한 날씨. 침대에 있는 벌레 때문에 간밤에 반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지운영 씨의 멋진 보금자리를 방문했다. 지운영 씨는 자신이 이름은 최운학(崔雲鶴)이고 별호는 휴정(休靜)인 유명한 승려 서산대사가 환생한 사람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 이 유명한 승려가 300년 전에 생존했을 때 어떤 소녀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서산대사는 그녀의 열정을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그 소녀의 영혼은 서산대사가 환생할 때마다 서산대사의 영혼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래서 지운영 씨는 지난 30년 동안 상처받은 소녀의 영혼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지운영 씨는 신의 계시에 의해서 2년 전, .. 2023. 12. 24. 조선 연산군의 묘 ★외예 - 외가후손 임하필기 제26권 / 춘명일사(春明逸史) 폐조(廢朝)의 분묘 연산군(燕山君)의 묘는 양주(楊州)의 해등촌(海等村)에 있는데, 그 외예(外裔)가 서로 전하여 수호해 온 것이다. 아직껏 예전의 곤룡포가 묘사(墓舍)에 소장되어 있고, 매년 가을마다 무격(巫覡)으로 하여금 푸닥거리를 하도록 하는 일이 곧 연례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젊었을 때 동서(東墅)에서 독서하면서 일찍이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의식이 매우 외설스러워 못 하게 금하려고 생각하였으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간하기에 그만두었다. 광해군(光海君)의 묘도 같은 현(縣)의 적성동(赤城洞)에 있다. 2023. 6. 24. 조선의 전우치(田禹治) 靑莊館全書 [ 청장관전서 ] 조선후기(後期)의 학자(學者)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저술(著述) 총서 청장관전서 제68권 한죽당섭필 상(寒竹堂涉筆上) 전우치(田禹治) 전우치는 담양(潭陽)사람이다. 그는 아이 시절에 절에서 글을 읽었는데 하루는 중이 술 한 항아리를 빚어 놓고는 그에게 잘 간수하라 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 중이 여러날 만에 암자에 돌아와서 술항아리를 보니 술은 없고 술찌기만 남아 있었다. 그러자 중이 우치(禹治)에게 술을 훔쳐 마셨다고 책망하였다. 그러나 우치는 결백을 밝힐 길이 없었다. 이렇게 되자 우치는 할 수 없이 중에게 다시 부탁하기를, “또 한 항아리의 술을 빚어 놓으면 내가 틀림없이 도둑을 잡겠다.” 하니, 중이 우치의 말대로 다시 술을 빚어 넣었다. 그런데 술이.. 2023. 6. 19. 동의보감 소주(燒酒) 소주의 뜻은 증류주란 뜻으로서 고려시대 몽골에서 유입되어 지금까지 즐겨 마시는 한국의 대표 주류다. 소주를 과음했을시 증상과 치료법이 동의보감에 써있으나 그냥 재미로 보도록 하자 조선 숙종 때 실학자 유암 홍만선(洪萬選:1643∼1715) 산림경제 제3권 / 구급(救急) 소주(燒酒)의 독 소주를 너무 마셔 중독(中毒)이 되면 얼굴이 파랗게 되고 구금(口噤)이 되며, 혼미(昏迷)하여 의식을 잃게 된다. 그리고 심하면 창자가 썩고 옆구리가 뚫어지며 온몸이 검푸르며, 토혈과 하혈이 되어 곧 바로 죽게 된다. 환자를 처음 발견하면 빨리 옷을 벗기고 몸을 밀어 무수히 굴려서 토하게 하면 소생한다. 또 온탕(溫湯)에 나체(裸體)로 담가놓고 온탕을 부어주어 항상 따뜻하게 해주어야 하며, 만약 냉수(冷水)를 부어주면 .. 2023. 5. 26. 고려시대 신사(神祠) 남치근이 없애버린 신사들 https://iece12345.tistory.com/235 한국도 일본처럼 신토가 많이 발달했던 나라였으나, 조선시대 유생들이 다 불태워 버려서 전부 사라졌다. 대대적으로 없애버린 시점으로 보면 명종시대 다. 한국은 역사만 길뿐 유적같은 건 하나도 없는 나라다. 그말은 즉 조상들이 남겨놓은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고려도경 사우(祠宇) 동신사(東神祠) 동신사는 선인문(宣仁門) 안에 있다. 땅이 좀 편평하고 넓은데, 정전의 집이 낮고 누추하며 행랑과 월랑 30칸은 황량하게 수리하지 않은 채로 있다. 정전에는 ‘동신성모지당(東神聖母之堂)’이란 방이 붙어 있고 장막으로 가려 사람들이 신상(神像)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나무를 깎아 여인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2023. 5. 25. 영조시대 요녀를 죽이다 ★무인년 황해도의 사건 : 무인년(1758, 영조34)에 황해도 평산(平山) 등지에 요녀(妖女)들이 생불(生佛)이라 칭하면서 백성들을 현혹시켰으므로 어사 이경옥(李敬玉)을 보내어 요녀들을 잡아 죽였다. 《영조실록 34년 5월 18일》 《정조실록 15년 11월 7일》 ※영조실록 91권, 영조 34년 5월 18일 계묘 2번째기사 1758년 청 건륭(乾隆) 23년 어사 이경옥을 황해도에 보내 금천 등지에서 혹세 무민한 요녀를 효시토록 하다 명하여 어사(御史) 이경옥(李敬玉)을 황해도에 보내어 요녀(妖女)를 효시(梟示)하게 하였다. 이때 황해도 금천(金川)·평산(平山)·신계(新溪)에 요녀 네 명이 있어, 스스로 생불(生佛)이라고 일컬으면서 어리석은 백성을 현혹시키자, 사람들이 모두 무당을 배척하고 이를 몹시.. 2023. 5. 23. 증산교단 태을교(太乙敎) 태을교는 증산교단 이다. 자세한건 밑에 주석을 보자, 증산도는 지금도 있다. 윤치호는 일제가 각종 사이비 종교를 그냥 놔두는걸 불만스럽게 생각하고있다. 그러나 지금 현대에서도 사이비 종교는 그냥 놔두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똑같다고 할수있다. 사이비 종교에 쉽게 현혹되는 사람들은 이성력이 극히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1월 9일 《화요일》 오전에 흐리다가 오후에 갬. 데라우치 정권의 결점이 무엇이든, 그리고 결점이 많았다고 해도 한 가지 잘한 일은 엄격한 기강을 세운 것이었다. 데라우치 정권하에서는 무당과 점쟁이, 온갖 부류의 정치 협잡배들이 자취를 감추어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이토 총독 치하의 이른.. 2023. 3. 28. 2살된 이방원 아들의 사망 이당시는 태상왕 - 이성계(1408), 상왕 - 이방과(1419) 전부 살아 있을때였다.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 7월 1일 무자 1번째기사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상왕의 탄일에 2살된 왕자가 죽다 종척 대신(宗戚大臣)을 상왕전(上王殿)에 보내어 헌수(獻壽)하였으니, 상왕(上王)의 탄일(誕日)인 때문이었다. 마침 이날에 왕자(王子)가 죽었는데, 나이 두 살이었다. 조회를 2일 동안 정지하고, 백관이 대궐에 나아가 조상하고 위로하였다. 영삼사사(領三司事) 하윤(河崙)·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 이무(李茂) 등이 성례(盛禮)를 써서 장사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하상(下殤)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무얼 성례(盛禮)를 쓰랴?" [註 067] 하상(下殤) : 여덟 살에서 열세 살까지 사이에 요절.. 2023. 3. 20. 남치근이 없애버린 신사들 한국은 일본처럼 신토가 발달한 나라였으나 조선이 들어서고 유생들 때문에 초중기에 다사라졌다. 이 임하필기 내용에 남치근이 부순 신사들이 많으나 신사 이름은 하나만 쓰여있다. 미륵 이란 단어가 있는것을 보아 신상 또한 있었을것이고 불교신이 아니었을까 ★남치근 [南致勤] ?∼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무신 ※임하필기 제17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음사(淫祠)를 없애다 남치근(南致勤)이 경상 병사(慶尙兵使)가 되어 조령(鳥嶺)을 넘는데 역졸(驛卒)이 말을 가로막으며 산언덕을 향하여 말하기를, “이곳은 예로부터 국사신당(國祀神堂)이 있던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는 사신과 장사치들은 모두 절하고 무릎 꿇고 기도한 후에 갔습니다.” 하니, 남치근이 곧장 사당 앞으로 가서 사당 건물을 모두 헐어 버리고 미륵(.. 2023. 3. 18. 부엉이를 무서워 했던 조선왕들 실록에 부엉이 라고치면 많이 나오지만 왕별로 하나씩만 축약했다. 부엉이가 울었을 경우 궁궐을 떠나거나 중들을 모아서 빌거나 해괴제를 지냈다. 그러다가 세조시절 부엉이가 울어도 아뢰지 말라고 일렀다. 세조시대 이후로는 부엉이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 해괴제(解怪祭) - 나라에서 괴이한 사건이 생겼을 때에 지내던 제사. ※ 기양(祈禳) - 재앙(災殃)은 물러가고 복(福)이 오라고 비는 일. 태조실록 15권, 태조 7년 9월 10일 임오 1번째기사 / 밤에 부엉이가 경복궁 북원에서 울다 밤에 부엉이가 경복궁(景福宮) 북원(北園)에서 울므로, 상왕(上王)이 북쪽 양정(涼亭)으로 옮겨 가서 거처하였다. 정종실록 2권, 정종 1년 8월 15일 임자 1번째기사 / 부엉이가 솔개에 쫓겨 근정전 위에 와서 모이자 .. 2023. 3. 17. 고려시대 늙은 무당 ※ 이규보 문집 동국이상국전집 제2권 / 고율시(古律詩) 노무편(老巫篇) 병서(幷序) 내가 살고 있는 동쪽 이웃에 늙은 무당이 있어 날마다 많은 남녀들이 모이는데, 그 음란한 노래와 괴상한 말들이 귀에 들린다. 내가 매우 불쾌하긴 하나 몰아낼 만한 이유가 없던 차인데, 마침 나라로부터 명령이 내려 모든 무당들로 하여금 멀리 옮겨가 서울에 인접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한갓 동쪽 이웃에 음란하고 요괴한 것들이 쓸어버린 듯 없어진 것을 기뻐할 뿐 아니라 또한 서울 안에 아주 이런 무리들이 없어짐으로써 세상이 질박하고 백성들이 순진하여 장차 태고의 풍속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며, 이런 뜻에서 시를 지어 치하하는 바이다. 또 밝혀 둘 것은 이 무리들도 만약 순진하고 질박했다면 어찌 왕경(王京)에서 쫒겨났겠는가. .. 2022. 12. 1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