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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국20

조선반도 공녀 헌납 2023. 8. 4.
중국인 섭정국의 행패 진법을 몰랐던 조선인들 https://iece12345.tistory.com/360 임진왜란 시절 - 조선인들은 문치로 인해 무(武)를 천시하다 보니 진법이나 병서를 전혀 모르던 민족 이었다. 그래서 중국인 중에 진법에 잘알던 섭정국 이란 사람을 극진히 대접하며 조선 병사들에게 진법을 훈련 시켜주기를 바랬는데, 그러긴 커녕 조선인들을 두둘겨 패며 오만 방자하게 굴어서 제발 돌아가 달라고 사정해야 했다. 글로 보아 이당시에는 조선의 풍수지리도 크게 쇠퇴했던 모양이라서 섭정국에게 조선 궁궐터를 묻고있다. 선조실록 136권, 선조 34년 4월 3일 경오 2번째기사 1601년 명 만력(萬曆) 29년 사신이 섭정국의 행적을 규탄하다 섭정국은 중국의 무뢰인으로서 경리(經理) 문하의 일개 편졸(褊卒)에 불과한데, 공.. 2023. 7. 20.
중국에 억만년 충성을 맹세하다 조선이 건국한후 중국에 말 60필을 바치면서 억만년동안 조공 하겠다고 충성을 맹세했다. 태조 2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洪武) 25년) 10월 25일(계유) 정도전이 명나라에 가지고 간 황제의 덕을 칭송하는 표문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정도전(鄭道傳)을 보내어 중국 남경[京師]에 가서 사은(謝恩)하고 말 60필을 바치게 하였다. 그 표문(表文)은 이러하였다. “배신(陪臣) 조반(趙胖)이 남경에서 돌아와 예부(禮部)의 차자(箚子)를 가지고 와서 삼가 황제의 칙지(勅旨)를 받았는데, 고유(誥諭)하심이 간절하고 지극하셨습니다. 신은 온 나라 신민과 더불어 감격함을 이길 수 없는 것은 황제의 훈계가 친절하고 황제의 은혜가 넓고 깊으시기 때문입니다. 몸을 어루만지면서 감격함을 느끼고 온 나라.. 2023. 6. 3.
조선 세종 중국사신 영접 절차 2 조선 영조 중국사신 영접 절차 https://iece12345.tistory.com/220 한국 최고의 위인 세종은 중국 황제의 조무라기 다. 세종이 뛰어나다고 해봐야 중국이란 우물안에서 하수인 이였다. 이런 잔챙이가 최고 위인이라니 한국 수준을 보여줄 뿐이다. 세종 3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1월 19일(갑자) 2번째기사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부절과 고서를 받다 명나라 황제는 대감(大監) 황엄(黃儼)을 보내어, 정사(正使) 광록 소경(光祿少卿) 한확(韓確), 부사(副使) 홍려시 승(鴻臚寺丞) 유천(劉泉)과 함께 부절(符節)과 고서(誥書)를 받들고 와서 왕명(王命)을 전달하게 되므로, 채붕(綵棚)을 매고 잡희(雜戲)를 베풀어 영접하였다. 임금은 편복을, 조신(朝臣)은 조복을.. 2023. 5. 24.
청나라 황제의 은혜 청나라 황제는 조선을 정복한후 조선왕조를 유지시켜 준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 하라고 말하고 있다. 중원을 정복한 후에는 불쌍한 조선인들을 위해 조공물을 줄여준다. 청나라 황제의 인덕은 바다 보다도 넓다.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 한국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28일 무진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용골대가 한의 칙서를 가지고 오다. 그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는데 짐이 다시 살아나게 하였으며, 거의 망해가는 그대의 종사(宗社)를 온전하게 하고, 이미 잃었던 그대의 처자를 완전하게 해주었다. 그대는 마땅히 국가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를 생각하라. 뒷날 자자손손토록 신의를 어기지 말도록 한다면 그대 나라가 영원히 안정될 것이다. 짐은 그대 나라가 되풀이해서 교활하게 속였.. 2023. 4. 26.
중국인에게 곤장 맞은 조선 장군들 박진 중국인 에게 맞아 죽다 https://iece12345.tistory.com/243 관유격 이라는 중국 장수가 조선장군 4명을 묶어다가 곤장을 치고 온갖 치욕을 보였다. 이당시 조선인들은 중국인들의 노리개 였다. 참고로 박진이라는 조선장군은 누승선 이라는 중국 장수에게 4년후에 맞아죽는다. ​ ※ 선조실록 40권, 선조 26년 7월 18일 경오 3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박진 등에게 곤장을 친 관 유격의 일로 경략에게 게첩을 보내라 전교하다 상이 정원에 전교하였다. "지금 듣건대 관 유격(毌遊擊)이란 자가 심유경(沈惟敬)의 말을 듣고 왜적을 비호하여 박진(朴晉) 등 네 장군을 묶어다가 곤장까지 치고 온갖 치욕을 보였다고 하니 통분함을 견딜 수 없다. 박진 등이 비록 배신(陪臣)이기.. 2023. 3. 25.
박진 중국인 에게 맞아죽다 너무 끔찍한 내용이어서 , 선조수정 실록이나 기타 여러 선비들 문집에서는 기록이 없는데, 간신히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당시 조선인들이 어떤 취급이나 당하고 살았는지 알수있다. 선조 88권, 30년(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5월 29일(기미) 1번째기사 《주역》을 진강하고 김응남이 서계초를 올리고 군량·축성 문제 등을 의논하다 경립이 아뢰기를, “박진(朴晉)의 사망은 중국 장수에게 구타를 당해서입니다. 죽은 뒤에 보니, 가슴뼈가 부러져 있었다 합니다. 국가의 일로 죽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 비하여 더욱 참혹합니다. 지난번에 홍계남(洪季男)의 노모(老母)에게 음식물을 하사하도록 명하자, 중외(中外)가 모두 감격했었습니다. 박진이 홍계남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에게.. 2023. 3. 25.
조선 중국사신 영접 절차 ※ 일성록 - 1752년(영조 28)부터 1910년까지 주로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기 ※ 모화관 - 중국 사신 영접하던곳 ※ 악차(幄次) - 임금쉬는 곳 ※ 연(輦) - 가마 ※ 인의(引儀) - 6품관직 ※ 사배례(四拜禮) - 네번절 국역 일성록[日省錄] 영조39년 계미(1763,건륭 28) 9월4일 (무오) 무오 상께서 모화관(慕華館)에 나아가 칙서(勅書)를 맞이하셨는데, 내가 따라가 참석하였다. ○ 그날 상께서 모화관에 도착하여 악차(幄次)에 들어가셨다. 내가 반열에 나아가고 종친과 문무백관이 각각 반열에 나아갔다. 칙서가 도착할 때가 되자, 내가 익선관(翼善冠)에 무양 흑단령포(無揚黑團領袍)와 청정 소옥대(靑鞓素玉帶)를 갖추고 지영위(祗迎位)에 나아갔고, 종친과 문무백관은 각각 흑단령(黑團.. 2023. 3. 3.
위임받은 조선국왕 이 실록글은 중국 황제에게 조선 국왕으로서 위임 받는 내용이다. 연산 2권, 1년(1495 을묘 / 명 홍치(弘治) 8년) 1월 13일(정유) 2번째기사 성종 대왕의 행장 제서[制]를 내리기를, “짐이 공경히 제업(帝業)을 이어받아, 속국(屬國)을 잘 돌보기에 힘써서, 먼 데 사람을 회유(懷柔)하여 가깝게 만들고, 일체(一體)로 보아 똑같이 사랑하노라. 동번(東藩)은 대대로 예의를 숭상한다 일컬으니, 세대를 상속하는 데는 어진 이에게 맡겨야 하리로다. 조선 국왕 이 아무는 총명을 타고났고 학문이 숙성하여 국론(國論)에 일치한 바 되었으니, 종사(宗祀)를 이어 마땅하리로다. 이제 특히 조선 국왕으로 봉하여 국사를 총통(總統)하게 하노라. 아! 성경(誠敬)이라야 몸을 닦을 수 있고, 예의(禮義)라야 나라를 .. 2023. 2. 20.
조선의 속국 의식 절차 세종 시기 실록 글인데 이글을 보면 조선에서는 중국 속국으로서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수있다. ※ 성절 - 황제의 탄신일 ※ 하례 -축하의 예식 ※ 의주 - 의식의 절차 세종 3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4월 16일(경인) 3번째기사 예조에서 성절 하례 때의 절하는 자세에 대해 아뢰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성절(聖節)에 대한 하례(賀禮)는 속국의 의주(儀注)에 의하면, 왼쪽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고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2023. 2. 17.
묄렌도르프 의 조선략기 독일인 묄렌도르프는 조선에 입국하여 외교고문을 맡았다. 그 와중에 조선략기(朝鮮略記)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조선왕은 청황제의 노복(奴僕)이다" 라고 써놨다. 이같은 글에서 그당시 외국인 눈에 청나라와 조선관계가 어떻게 보였는지 전적으로 보여준다. ※奴僕 [ 노복 ] 사내종 ※坤殿 [ 곤전 ] 왕비(王妃) 윤치호일기 제1권(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1884년>1월 28일~2월 26일(음력 1884년 1월 4일~1월 30일)>6일(10일, 수, 맑음, 삼가다) 6일(10일, 수, 맑음, 삼가다) 공사관에서 지내다. 밤에 예궐하여 뮐렌도르프가 간행한 『조선략기(朝鮮略記)』에 “조선왕은 청황제의 유명무실한 노복(奴僕)이다”라고 한 구절이 있음을 아뢰었다. 주상께서 처음에 노한 빛을 띠셨다. 곤전(坤殿)께서.. 2023. 1. 29.
황제가 된 고종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을 맺는다. 이 조약의 1조에는 조선은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난 독립국임을 인정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후에 조선은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난게 기뻤는지 삼전도비를 땅에 묻고, 독립문을 세우고, 고종은 황제식을 거행한다. 4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4(한국사료총서 번역서4)>1897년(개국 506년, 광무 1년, 정유년)>10월 > 11일《월요일》 비. 오늘 조선의 왕인 전하께서 환구단에 왕림하셔서 제물을 바치고, 황제의 칭호를 갖겠다는 의지를 천신에 알렸다. 둥근 단(圜丘)인 환구단은 돌로 세워졌다. 새로 지은 환구단은 예전에 중국 외교관을 대접하던 남상궁(南尙宮)이 있던 자리에 설립되었다. 현재의 궁과 환구단 사이의 행렬은 공지된 시간보다 3시.. 2023.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