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종시대38

세종시대 굶주림으로 흙을 먹다 ※세종실록 19권, 세종 5년 3월 13일 갑오 6번째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함길도 화주에 빛깔과 성질이 밀과 같은 흙으로 음식을 만들어 굶주림을 면하다 함길도의 화주(和州)에 흙이 있는데, 빛깔과 성질이 밀[蠟]과 같았다. 굶주린 백성들이 이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으매,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는데, 그 맛은 메밀[蕎麥] 음식과 비슷하였다. ※세종실록 104권, 세종 26년 4월 24일 계묘 2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지인 박사분을 황해도에 보내어 흉년으로 흙을 파먹는다는 말을 확인하도록 하다 임금이 황해도에 흉년이 들어 인민들이 모두 흙을 파서 먹는다는 말을 듣고, 지인(知印) 박사분(朴思賁)을 보내어 가서 알아보게 하였더니, 이때에 와서 사분이 회계(回啓)하기를.. 2024. 2. 4.
세종이 천백번 읽은 책 구소수간(歐蘇手簡) ※ 구소수간(歐蘇手簡) 중국 문호 구양수와 소동파의 편지글 모음 해동야언 1 세종(世宗) ○ 세종은 천성이 학문을 좋아하여 그가 세자로 있을 때에 매번 글을 읽을 때면 반드시 1백 번을 채우고, 좌전(左傳)과 초사(楚辭) 같은 것도 또 1백 번을 더 읽었다. 일찍이 병이 들었을 때에도 글 읽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병이 점점 심해지자 태종은 내시를 시켜 그 처소에 가서 책을 모조리 거두어 가지고 오게 하였다. 구소수간(歐蘇手簡) 한 권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는데, 세종은 그것을 천백번이나 읽었다. ---------------------------------------- ​ 세종은 어떻게 책한권을 1천1백번 읽었을까, 지금 까지 내글을 잘 따라왔다면 다들 알거라고 믿는다. 정답은 그당시 1책은 지금 1.. 2024. 1. 7.
한국인들의 대표왕 세종 전국민 50% 노비로 만든 - 노예의 왕 중국에 극심한 사대를 한 - 사대주의 왕 신하들 부정부패 눈감아준 - 부패의 왕 중국에 여자 팔아먹는 - 창녀들의 왕 ​ 노예 , 사대 , 부패 , 창녀 - 이얼마나 한국에 딱맞는 단어들인가 부정부패 신하를 확실히 단속 했어야 하는데 왕부터가 저모양이니 이후에 양반들의 부정부패가 심각해 진거다. 부정부패 저지른 신하를 솜방망이 처벌이나 하고 다시 등용하니, 신하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 부정부패 저질러도 되겠구나 생각할게 아닌가, 최근에 삼성 총수 이재용, 박근혜, 이명박 부정부패를 저질렀지만 전부 손방망이 처벌 받고 나왔다. 그러나 이 시작을 보면 부패의 왕 세종 부터 였다. 정말 세종은 지금 한국에 딱맞는 왕이다. https://iece12345.tistory.. 2024. 1. 7.
이슬람과의 교역을 망친 세종 그당시 이슬람은 회회(回回)라고 칭했다. 고려말 이슬람과의 교역은 다들 잘 알거다. 실제로 보면 조선 초기까지 이슬람과 교역을 했다. 그러나 그 교역을 세종이 아작 냈다. 사학계에서도 세종의 이 정책을 철저히 비판하고 있다. 과연 조선이 고려를 본받아서 이슬람과 계속 교역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 4월 4일 임술 4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예조에서 사치한 폐백에 대해 계책을 올리다. 대조회 때 회회도 의식을 폐지하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회회교도(回回敎徒)는 의관(衣冠)이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보고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더불어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미 우리 나라 사람인 바에는 마땅히 우리 나라 의관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 2023. 12. 17.
소설 홍길동전 세종시대 소설 홍길동전 시대배경을 보면 조선국 세종대왕 즉위 15년 - 이라고 써있다. 실제로 홍길동은 연산군때 활동한 의적이었지만 정작 허균이 쓴 소설 홍길동전은 세종시대가 시대배경이다. 사학계에서 미화해서 그렇지 세종시대는 암흑기 였다, 명화적 같은 도적도 많았고, 기근이 일어나서 인육을 먹고, 먹을게 없어서 흙파먹고, 중국에 금은 조공에, 소 1만마리 조공에, 말조공에, 처녀조공에, 고자조공에, 한자 음독화로 한국어 말살정책에, 노비 종모법에 정작 한글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허균은 세종시대를 암흑기로 보고 있었다. 현대 사학계에서 이미지 마케팅으로 암군을 성군으로 포장 가능한지 잘 보여주다. 세종은 외교도 무능한 왕이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 2023. 10. 26.
중화 어버이의 품으로 주윤발 周潤發 저우룬파 왕조현 王祖賢 왕쭈셴 유덕화 劉德華 류더화 임청하 林靑霞 린칭샤 이소룡 李小龍 리샤오룽 주성치 周星馳 저우싱츠 오맹달 吳孟達 우멍다 홍금보 洪金寶 훙진바오 등소평 鄧小平 덩샤오핑 ​ 그전에는 중국인 배우나 유명인들은 한국식으로 불렀는데 지금은 그게 폐지되어 중국 현지발음대로 표기하고 있다. 그냥 보면 알겠지만 발음이 유사하다. 지금 한국인들 이름도 그대로 중국에 갖다 써도 될정도다. 이게다 세종놈이 한자 음독화 프로젝트로 한국 고유어를 말살 시켜서 그런거다. 혜례본에 쓰여있는 "나랏말 소리가 중국과 달라" 그말 그대로다. 한국어가 중국과 다르다고 짱센일체 시켜버려서 지금 한국어는 한자어가 80%다. 고려시대 까지는 한자를 읽는다 해도 일본처럼 훈독 고유어로 읽었는데, 세종은 그걸 .. 2023. 10. 13.
혜례본의 중국 매일경제2016.09.19.네이버뉴스 훈민정음에 나오는 `중국`,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 훈민정음 혜례본 서문에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에서 국뽕들이 말하길 조선 서울을 가리키는거다 라고 센부짖으며 그당시 세종시대에 중국이란 단어는 중화를 가리키는 단어로 안사용 했다고 말하며 증거로 삼았지만 '중국'이라는 단어는 고대부터 중국에서 사용했다. '사기' '맹자' 같은 책들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훈민정음 혜례본 서문에 주석 까지있다. 저 붉은색 칸에 "중국은 황제 계신 나라이니 우리나라에서 보통 강남(江南)이라 하느니라." 이로써 중화를 가리키는 단어로 100% 확실해졌다. - 중국이란 단어는 실록만 봐도 많이 사용했다.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7월 17일 병신 1번째기사 윤이(尹彝)·이초(李初) .. 2023. 10. 12.
세종과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5권, 세종 21년 6월 26일 임인 2번째기사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사헌부에서 당상관의 선정·감사의 천거·관리의 제수·승정원의 임무 등에 대해 상소하다 1. 사적(史籍)의 저장을 널리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전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짓고 말하기를, ‘명산(名山)에 간직하고 부본(副本)-복사본-은 서울에 둔다. ’고 하였사옵니다. 우리 동방(東方)은 단군 조선(檀君朝鮮)이 당요(唐堯) 때에 시작하였고, 기자(箕子) 조선은 주 무왕(周武王) 때에 봉하였사오니, 군신 상하(君臣上下)와 예악 문물(禮樂文物)을 유지하여 서로 전한 것이 오래였사옵니다. 그러하오나 문적(文籍)을 전함이 대개 적고 고려의 사적(史籍)도 잃은 것이 또한 많사오니, 이는 반드시 널리 간직.. 2023. 9. 23.
이상한 문자이름 세상 천지에 저런 병신같은 문자이름은 본적이 없다. 훈민정음 에서 "음"은 소리란 뜻이다. 이게 문자가 될려면 훈민정자 , 훈민정문 이 맞다. "정음"은 문자이름이 될수없다. 훈민정음의 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인데 한자 음독 표기화를 뜻한다. 여기서 "바른 소리"는 언어를 뜻하는 것으로서 언어 랑 문자도 구별못하는 무식한 놈이 사기를 칠려니간 이런 우스운 일이 일어나지 한자 음독화 프로젝트 https://iece12345.tistory.com/368 2023. 7. 30.
한자 음독화 프로젝트 고려시대 까지는 한자를 일본처럼 훈독으로 읽었는데, 세종시대에 한자 바로잡기 프로젝트를 실행 했으니 그게 바로 한자 음독화 프로젝트 이다. 즉 중국 처럼 한자를 음독으로 읽자는 거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학계에서는 이걸 숨기고있다. 그러니간 한글창제 프로젝트하고 한자 음독화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거다. 그러다 보니 실록에 쓰여있는건 한자 음독화 프로젝트인데 한글 프로젝트로 잘못알려지기도 한다. 그 대표적으로 요동에 있는 음운학 권위자인 중국인에게 집현전 학자들을 보낸거 라든가 그리고 또 그 유명한 최만리 상소문에서 세종이 말한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 2023. 7. 28.
장영실의 업적들 실록과 야사를 보면 장영실이 만든것은 전부 세종이 가르쳐서 만든거라고 나와있다. 세종이란 인간이 이모양이니 진짜 한글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거다. 대동야승 해동야언 1 세종(世宗) 세종이 처음으로 아악(雅樂)을 제정하였는데, 중추부사 박연(朴堧)이 도와 이루어진 것이다. 박연은 앉아서나 누워서나 항상 손을 가슴에 얹어 악기를 다루는 시늉을 하고, 입으로는 휘파람을 불어 율려(律呂)의 성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10여 년 만에 비로소 이룩하였는데, 세종이 매우 중히 여겼다. ​세종은 또 자격루(自擊漏 시계의 한 가지)ㆍ간의대(簡儀臺 천문대)ㆍ흠경각(欽敬閣 물시계를 두었던 집)ㆍ앙부일구(仰釜日咎 해시계) 등을 만들었는데 제작이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였으며, 그것은 모두 임금의 재량에서 나온 것이다. 비.. 2023. 7. 17.
한글 창제의 의문점들 세종이 한글을 직접 만들었다고 굳게 믿고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는 머리가 모자른거다. 생각이 없는 것 뿐이다. 대놓고 그걸 부정하는 영화까지 만들어 졌다. ​ 1. 비하인드 스토리 왕이 만들었다는데 어떻게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다는건 치명적이다. 조선 초기 실록글만 봐도 그렇게 자세하게 기록해놓는게 조선인들이었다. 1). 문익점 면포 2). 문종의 측우기 3). 최무선의 화약무기 저 3개만 봐도 실록에 자세하게 기록해 놨다. 근데 한글은 왕이 만들었다면서 고작 어제 친제 써놓고 끝났다. 저 3개의 기록만 봐라 얼마나 감동적인 스토리냐, 근데 세종의 한글창제 기록은 없다. 없으니간 못쓴거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왔으면 대체 어떻게 가져온줄 알겠나, 외교적으로 받았나, 친구에게 받았나, 아니면 훔쳐서 가져왔.. 2023.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