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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시대32

허구헌날 술쳐먹고 놀았던 이순신 난중일기'를 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오늘도 소주를 마셨다’라는 문장이다. 1592년 처음 출전한 옥포 해전에서부터 격전 중 사망한 1598년 노량 해전까지, 이순신 장군은 보통 10일에 한 번씩은 꼭 술을 찾아 마셨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40123_0002602272 ​ 「난중일기」 - 1597년 8월 21일 소주 마시고 인사불성 10여 차례나 구토 ※ 기생 끼고 술쳐먹고 놀다 정유재란 불러와 https://iece12345.tistory.com/530 휴전기간 놀기만한 이순신 난중일기 전서 1595년 갑신일 1월 11일 (음 2월 19일) 우박이 오고 샛바람이 불다. 식사를 한 뒤에 순천부사ㆍ흥양현감ㆍ고성현감ㆍ.. 2024. 1. 29.
휴전기간 놀기만한 이순신 난중일기 전서 1595년 갑신일 1월 11일 (음 2월 19일) 우박이 오고 샛바람이 불다. 식사를 한 뒤에 순천부사ㆍ흥양현감ㆍ고성현감ㆍ웅천현감ㆍ영등포만호가 와서 이야기했다. 고성현감은 새 배를 독촉하여 만드는 일로 아뢰고 돌아갔다. 난중일기 전서 1595년 정사일 2월 14일 (음 3월 24일) 맑고 따뜻하다. 식사를 한 뒤에 진도군수ㆍ 무안현감ㆍ함평현감이 교서에 숙배하고서 방비처에 수군을 일제히 징발해 보내지 않은 것과, 전선을 만들어 오지 않은 일로 처벌했다. 영암군수도 죄를 논했다. 조카 봉ㆍ해ㆍ분과 방응원이 아울러 나갔다. ------------------------ ​ 휴전기간 시기인 난중일기 1595 - 1596년 기간을 읽어봤는데 판옥선 만드는것과 병사징발 , 병사훈련 같은걸 찾아 봤으나 .. 2024. 1. 29.
정유재란 - 남해안으로 퇴각하는 왜군 왜군은 14일에 명군에 의해 조선정벌이 어려워 지자 남해안 으로 퇴각한다. 15일에는 비변사 에서 왜적이 퇴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의논한다. 9월말경 가토는 울산 , 시마즈 는 사천 , 전주를 점령하고 있던 고니시는 남하 하는 왜군과 같이 순천으로 남하 하여 왜성을 축성 한다. 왜군의 남해안 으로 남하한걸 이순신 에게 공을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아니다. 명량해전은 16일이다. 애초에 명량해전 같은 작은해전으로 왜 퇴각하겠냐, 고작 판옥선 12척이 뭐가 무서워서, 마지막 선조의 말만 봐도 요사이 왜군을 물리친 것은 모두 직산전투의 영웅 양경리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조명연합군 은 서울을 탄탄히 방어하고 있어 직산전투에서도 이기기 어려운 명군과 싸우기 어려운데 모험을 걸기보다는 방어전이 유리한 관계로 남.. 2024. 1. 21.
풍신수길(豊臣秀吉)의 야망 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6일 갑인 8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당초에 우리 통신사(通信使) 황윤길(黃允吉) 등이 일본을 갔을 적에,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우리 나라에 글을 보내어 우리 나라로 하여금 군마(軍馬)를 정돈하여 일본과 더불어 연합해서 곧장 명나라를 침범하자고 하였으나 우리 나라는 의리를 들어 거절하고 바로 그해 4월에 성절사(聖節使) 김응남(金應南)의 사행(使行) 편에 그 사유을 갖추어 주문(奏聞)하였다. 천자(天子)가 이르기를 ‘조선은 본래부터 공손함을 비치어 우리의 속국이 되었다. 그러니 외침이 있는데 좌시해서야 되겠는가. 요동으로 하여금 즉시 정병(精兵) 2부대를 보내어 응원하게 하고 이어 은 2만 냥을 내어 조선국에 가서 호군(犒軍)하며 대홍(大紅)·저사(.. 2024. 1. 14.
진린장군의 노량해전 노량해전 명나라와 조선군 병력 그냥 명나라와 일본 싸움에 조선은 꼽사리 껴서 싸우다 새우등 터져 죽은거다, 노량해전은 중국 진린장군이 지휘한 해전 이었다, 이순신은 단지 중국인 진린장군 꼬붕이 노릇이나 하다 죽은거고, 그당시 조선 판옥선은 고작 60척 이었고, 일본은 400척, 명나라는 300척, 조선군은 7천명, 명나라군은 1만8천명 이었다, 어떻게 자국에서 싸우는데 중국군이 2배는 더 많았단 말인가, 그당시 수군 지휘권도 명나라에서 가주고 있어 이순신은 진린장군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노량해전에서 작전은 진린함대가 미끼역할을 하고 이순신과 등자룡이 좌우에서 협공하는 거였다. 조선에서는 이런 고난이도 병법을 몰랐기 때문에 노량해전 작전은 진린 장군 머리에서 나왔다. 또한 진린장군이 해전에서 쉽게 이길.. 2023. 12. 25.
임진왜란 육군과 수군 지휘권 임진왜란 당시 수군 , 육군 군사 지휘권은 명나라 에서 가주고 있었다. 이순신은 수군 지휘권이 없어서 매번 진린에게 중지 당했고, 마지막 해전 이었던 노량해전도 진린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선조 104권, 31년(1598 무술 / 명 만력(萬曆) 26년) 9월 10일(임진) 3번째기사 통제사 이순신이 진 도독에 대해 치계하다 통제사(統制使) 이순신(李舜臣)이 치계하였다. “진 도독이 신을 불러 ‘육군은 유 제독이 총괄하여 통제하고 수군은 내가 당연히 총괄하여 통제해야 하는데 지금 듣건대 유 제독이 주사(舟師)[수군]를 관장하려 한다 하니, 사실인가?’ 하기에, 신은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신이 주사를 정돈하여 바다로 내려가서 기회를 틈타 왜적을 섬멸하려 하여도 매번 도독에게 중지당하니 걱정스럽기 그지없.. 2023. 12. 25.
임진왜란 개조 일본도 곽재우 장검 권응수 장검 박홍춘 장검 이광악 장군 칼 임진왜란 의병장들이 일본도 노획해서 사용한 건 알고 있었는데, 처음 이걸 봤을 때 이게 일본도???라는 의문이 생겼다. 왜냐하면 일본도 라고 하기엔 이상하더라, 알아보니깐 일본도 노획해서 조선식으로 파쿠리 시킨 거다, 개조 부분을 보자면 칼날은 그대로 사용하고 나머지 일부는 조선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열등한 놈들이 도둑질하는 게 다 그런 법이다. 지금 이순신 장도에서 일부 조선식이 보이는 것도 똑같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한국 사학자 새끼들은 태구련 인지 태귀련 왜 이름이 두 개인지도 설명 못하는 머저리 들이다. 딱 한국 멍청한 새끼들 수준이 보인다. 전쟁 한창때 의장용을 만들었다고 하질 않나, 논리적으로 다 어긋나 있다. 이순신 장도에서 조선 형식이.. 2023. 12. 10.
실패한 임진왜란 해전 그 당시 해군은 바다에서 적이 못 오게 막는 게 임무였고 그 당시 조선 수군은 그 역할을 못해서 왜군에 의해 육지가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이순신은 그저 가끔 왜군 소수함정 해적질이나 하던 게 일상이었다, 이순신을 넬슨하고 비교하기도 하던데 솔직히 넬슨하고 비교할 수가 없다. 넬슨은 프랑스 군을 해상에서 막아냈지만 이순신은 그걸 못했다. 바다로 떨어져 있던 일본의 첫 관건은 배타고 조선에 침입을 해야 한다. 근데 이게 진짜 어려운 거다. 대마도 도주에 의해 왜군이 침입할 거란 정보도 입수 했었다. 대선단을 이끌고 조선에 왔다간 그대로 각종 화약무기와 대포 밥이 된다. 이미 고려시대 최무선이 보여줬다. 그 당시 왜군 함정에는 대포도 없어서, 해전에서는 조선이 유리했다. 그런데도 임진왜란 과 정유재란 당시 .. 2023. 12. 3.
조선의 가난한 백성 본문 내용은 선조 16년 1583년 일이다. 임진왜란은 선조 25년 1592년 이니간 전쟁때문에 못살아서 그런게 아니다. 원래가 처참한 나라였다. 대동야승 송와잡설(松窩雜說) 송와잡설(松窩雜說) 이기(李墍) 찬 ○ 통천군(通川郡) 읍내에 가난한 백성이 있었다. 겨울에도 입은 것이라고는 다만 묵은 솜과 해진 굵은 베옷뿐이었다. 소를 몰고 추지령(楸池嶺) 밑에 나무하러 갔는데, 마침 그날은 풍설이 너무도 차가웠다. 날이 저물자, 몰고 갔던 소가 빈 길마로 홀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깜짝 놀라서 몹쓸 짐승에게 해를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달려가 찾았다. 중대(中臺) 길에 이르니, 그의 남편은 동상(凍傷)을 입고, 눈 위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내는 곧 옷을 벗고 가슴을 맞대어 안고 누웠다. 혹시 다.. 2023. 12. 3.
원균이 선조에게 조총을 바치다 원사웅은 원균의 아들 ​ 선조실록 50권, 선조 27년 4월 23일 신미 8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경상 우수사 원균이 조총 70여 자루를 올리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이 전후 누차에 걸쳐 병기(兵器)를 올렸는데 이번에 또 보내온 크고 작은 조총(鳥銃)이 70여 자루에 이르고 있으니 이것만 보아도 그의 전공(戰功)을 알 수 있어 매우 가상한 일이다. 그것을 가지고 올라온 원사웅(元士雄)에게 직을 제수하라." 2023. 12. 3.
선조 - 이순신을 벌하다 이순신의 부산 왜영 사기장계 https://iece12345.tistory.com/386 조정을 기망했다는것은 부산왜영 사기 장계를 뜻하고, 적을 놓아주고 치지 않았다는 것은 가토상륙을 막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모공(冒功) : 없는 공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선조실록 86권, 선조 30년 3월 13일 계묘 2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이순신에게 벌하는 것을 대신들에게 의논하도록 하다 비망기로 우부승지 김홍미(金弘微)에 전교하였다. "이순신(李舜臣)이 조정을 기망(欺罔)한 것은 임금을 무시한 죄이고, 적을 놓아주어 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저버린 죄이며, 심지어 남의 공을 가로채 남을 무함하기까지 하며【장성한 원균(元均)의 아들을 가리켜 어린 아이가 모공(冒功) 하였다고 계문(啓聞).. 2023. 12. 3.
친구 사이가 아니였던 오성과 한음 승정원 일기 고종 10년 계유(1873) 9월 14일(기미) 맑음 자경전에 강관 조병창 등이 입시하여 《시전》을 진강하였다. 10-09-14[06] 상이 이르기를, “한음과 오성(鰲城)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친밀하게 사귀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였는가? 장난을 친 일이 아직까지 전설로 내려오고 있으니 이는 매우 소중히 여길 만한 일이다. 나이는 누가 많고 누가 적은지 모르겠다.” 하니, 이병교가 아뢰기를, “신의 선조와 오성은 과장(科場)에서 서로 사귀게 되었는데, 한 번 보고 매우 친밀해졌습니다. 이는 사적(事蹟)에 실려 있는 바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사귀었다고 하는 것은 민간에서 속되게 전하는 바입니다. 나이는 오성이 신의 선조보다 5세 많습니다.” ------------------------.. 2023.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