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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영조가 준 활

by afsefe 2023. 8. 28.

다산시문집 제14권 / 기(記)

홍 절도사(洪節度使)에게 임금이 하사한 각궁(角弓)의 기

나의 장인 홍 절도사(洪節度使)는 비록 무과(武科)로 조정에 나아갔으나, 영조(英朝) 말년에 총애를 받은 신하였다. 주상께서 일찍이 내원(內苑)에서 공(公)에게 명하여 활을 쏘게 한 적이 있었는데, 열 발을 쏘았으나 하나도 맞지 않았다. 주상은 그 활을 달라고 하여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활을 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죄는 활에 있다. 각궁(角弓)이라는 것은 강하면 튕기고 늘어지면 활끝이 뒤집히게 되는데, 지금 이 활은 늘어졌으니 명중할 턱이 있느냐. 내 활을 볼 것 같으면, 나는 비록 늙었지만 오히려 잘 맞는다.”

하시고, 이에 수염을 제치고 소매를 걷어붙이시더니 공에게 화살을 먹이라고 한 뒤에 하늘을 우러러 활을 당기고 가던 말[馬]을 멈추어 쏘니 표적에 정확하게 맞았다. 주상께서 한 번 웃으시고 활을 공에게 던져 주시면서,

“나는 한 번만 맞히면 족하다. 활을 그대가 받아 잘 간직하라.”

라고 하였다. 공이 몸을 굽혀 받고 인사를 한 뒤에 집으로 돌아와 그것을 간직하였다. 그리고는 때때로 활을 쏘았는데, 한 번 맞힌 뒤에 그만두었으니 이것은 옛일을 잊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나는 규장각(奎章閣)에 소속이 되어 내원(內苑)에서 활쏘기를 시험할 때마다 늘 맞추지 못하여 벌을 받았다. 공이 말하기를,

“나는 하사받은 이 활을 우리 집안 대대로 전하려고 하였으나, 우리집 아이는 병이 들었으니, 자네가 가져가게.”

하였다. 그러면서 말씀하기를,

“태조(太祖) 강헌대왕(康憲大王)은 신묘한 활솜씨가 뛰어나셨고, 영조도 활을 잘 쏘았으니 그 비법이 대대로 전해온 것이었다. 다만 한 번 명중시키고 던져 버리는 것은 그 능력을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성인(聖人)의 일이다. 옛날에 당 태종(唐太宗)은 활 만드는 자[弓工]를 불러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는 활의 이치는 깨닫지 못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영조는 한 번 보고 각궁(角弓)이 명중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는 영조의 지혜가 당 태종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대는 이 사실을 알라.”

하였다.

내가 이 활을 얻은 뒤로는 활쏘기 할 때마다 화살 몇 개씩을 맞추어, 전후에 걸쳐 받은 상이 많았다. 이리하여 이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아울러 이것을 얻게 된 전말을 기록하여, 장인과 사위가 양조(兩朝)에 걸쳐 받은 은혜가 이와 같이 융숭하였음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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