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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설총이 쓴 풍왕서

by afsefe 2023. 12. 10.

신라 설총이 쓴 풍왕서 다. 설총이 누구인가 이두를 만든 사람이다. 성이 설(薛)이고 이름이 총(聰)이다.  이름이 총이라고 이상하다. 지금이나 이상하지 그당시엔 총명한 사람에게 붙이는 좋은 뜻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점은 신라 시대는 훈독이 살아있던 시대다. 지금 한국은 세종이 훈독을 말살 시켜 버렸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설총 이라고 음독화 시켜서 부르는 것 뿐이지 한국 고유어로서 설총이 뭔지는 모른다. 지금 한국에 남아 있는 훈독은 일상어 뿐이다. 예를 들어 일본어의 총(聰)의 훈독은 사토이さとい 음독은 소우そう 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유어인 총(聰)의 훈독은 무엇이었을까, 

 

동문선 제52권 / 주의(奏議)

풍왕서(諷王書)

설총(薛聰)

신은 듣자오니, 옛날 화왕(花王 모란(牧丹))이 처음으로 이곳에 이르렀을 때, 향내 풍기는 동산 속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써 둘렀더니, 늦은 봄을 당해 곱게 피자, 온갖 꽃을 무시하고 유독 빼어났답니다. 그러자 가깝고 먼 곳에서 곱고 고운 정령과 젊디젊은 꽃들이 모두 달려와서 화왕을 뵙되 오직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답니다. 별안간 한 아리다운 아가씨가 고운 얼굴 하얀 이빨, 밝은 단장과 고운 옷차림으로 사뿐사뿐 걸으며 어여쁘게 앞에 와서 아뢰기를, “저는 눈처럼 흰 모래 물가를 밟고 거울인 양 맑은 바다 위를 마주보면서, 봄비에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쏘여 스스로 노닐었사옵니다. 저의 이름은 장미라 하옵니다. 대왕의 아름다운 덕망을 듣사옵고, 저 향내 풍기는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오니, 대왕께서 저를 허용하시겠사옵니까.”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내가 베옷에 가죽 띠를 띠고 흰 머리로 지팡이를 짚고 절름거리는 걸음으로 고불고불 걸어 오더니 아뢰기를, “저는 서울 밖 한 길가에 살고 있사옵니다. 아래로는 아득한 들 경치를 굽어보고, 위로는 높이 솟은 산 빛을 비겼사옵니다. 저의 이름은 백두옹(白頭翁)이라 하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대왕께서는 좌우의 공급이 넉넉하여 비록 기름진 쌀과 고기로써 창자를 채우고 아름다운 차(荼)와 술로써 정신을 맑게 한다 하오나, 상자 속에 깊이 간직한 좋은 약으로써 기운을 도울 것이요, 영사(靈砂)로써 독을 제거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비록 실과 삼의 아름다움이 있더라도, 갈[菅]이나 사초[蒯]도 버리지 말라. 모든 군자는 결핍될 때를 대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왕께서 뜻이 있으신지요,” 하였답니다.

어떤 자가 아뢰기를, “이 둘이 함께 왔으니,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놓친단 말씀입니까.” 하였더니, 화왕은, “저 사내의 말도 일리는 있겠지마는, 그렇게 되면 아름다운 아가씨를 놓치게 되겠으니, 장차 어떻게 하였으면 좋단 말인가.” 하고 답하였답니다. 그제서야 그 사내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기를, “저는 대왕을 총명하고도 의리를 아시는 분인 줄 알고 왔더니, 이제 보니 글렀습니다. 대개 임금된 분들이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좋아하고, 곧고 올바른 자를 싫어하지 않는 이가 드물었기 때문에, 맹가(孟軻)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었고, 풍당(馮唐)은 말단 벼슬로 머리가 희어졌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니, 낸들 어이하겠습니까.” 하였더니, 화왕은 곧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 했다.” 하고 사과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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