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는 양반들이 겉에 입고다녔던 옷이다. 고려도경에도 쓰여있던 것으로 도포착용은 신라때부터 입었던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웃긴것이 있으니 고려도경에는 서민과 귀족의 복식차이가 없었다. 서민도 도포를 입는것이 가능하다. 조선이 들어서고 서민은 도포를 못입게하고 가죽신발도 못신게 하고 모자도 못쓰고 다니게 했다. 그런데 그 양반만 입을수있었던 도포는 승려복식이다. 그렇게나 불교를 탄압했던 자들이 승려복식을 입고다녔단 말인가
※열하일기
동란섭필(銅蘭涉筆) / 동란섭필(銅蘭涉筆)
동란섭필(銅蘭涉筆)
우리나라 도포와 갓과 띠는 중국의 중옷과 흡사하다. 그들이 여름에 쓰는 갓을, 혹은 등(藤)으로 만들고, 혹은 종려(棕櫚)로 만들기도 한다. 도포는 특히, 깃이 모가 난 것이 좀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도포는 모두 검정 공단이거나 문사(紋紗)를 쓰고, 가난한 자는 오히려 수화주(秀花紬)나 야견사(野繭紗)로 도포를 만들어 입는다. 나는 변의(卞醫) 관해(觀海)와 더불어 옥전(玉田) 어느 상점에 들어갔더니, 수십 명이 둘러서서 우리들이 입은 베도포 만든 제도를 자세히 구경하다가, 매우 의아하게 여기면서 저희들끼리 서로 말하기를,
“저 중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니, 한 사람이 희롱으로 대답하여,
“사위국(舍衛國) 급고원(給孤園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곳)으로부터 왔겠지.”
한다. 우리들이 조선 사람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도포와 갓을 보고서 걸승(乞僧)들과 비슷하다고 조롱하는 것이다. 대체로 중국의 여자와 승려(僧侶)와 도류(道流)들은 옛날 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의관은 모두 신라의 옛 제도를 답습한 것이 많았고, 신라는 처음에는 중국 제도를 본뜬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풍속이 불교를 숭상하므로, 민간에서는 중국의 중옷을 많이 본떠서 1천여 년을 지난 오늘에 이르도록 변할 줄을 모르고, 도리어 중국의 승려가 우리의 나라 의관을 본떴다고 말했으니, 어찌 그렇겠는가.
중의 갓이, 등나무 실로 짠 것은 그 빛이 우리나라 초립(草笠)과 같고, 종려나무 실로 짠 것은 우리나라 주립(朱笠)과 같다. 등나무 갓에는 종려나무 실로 무늬를 놓고, 종려나무 갓에는 등나무 실로 무늬를 놓는다. 몽고 사람들도 역시 여름철에 갓을 쓰는데, 가죽으로 만들어 도금(鍍金)을 한 위에 구름 무늬를 그린 것이 많다. 우리나라 풍속에는 겨울에도 갓을 쓰고 눈 속에도 부채를 들어, 타국의 치소(嗤笑)를 받고 있는 것이다.
[★치소 - 비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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