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 화원 https://iece12345.tistory.com/77
조선시대에는 화원(花園)이라는게 없었다. 재미있는건 고려시대에는 있었다. 이 차이점은 무엇때문일까, 종교 차이 때문이라고 윤치호는 말하고 있다. 조선은 유교때문에 조경에는 전혀 신경을 안썼고, 일본은 불교때문에 아름다운 미적 감각을 훌륭하게 발달 시켰다고 말한다. 실제로 몇 안남은 고려시대 문화제를 보면 아주 아름답다. 고려 청자 라든가 고려시대 검이라든가 말이다.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6월>2일《월요일》오전에 흐리다가 이른 오후부터 반가운 비가 내림.
2일 《월요일》 오전에 흐리다가 이른 오후부터 반가운 비가 내림.
오전에는 집에 있었다. 아침을 먹은 뒤 치창과 함께 용취원(用翠園)을 방문했다. 서울에는 화원이 6개 정도, 어쩌면 그보다 더 있을 수 있는데, 그 화원들은 일본인 특유의 꽃에 대한 미적 감각을 만족시키고 있다. 일본인들은 너무 일찍 사들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꽃을 피울 시간도 거의 없다. 조선인들은 꽃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감상하는 문명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사실 조선은 꽃과 여성들이 이름을 갖지 못한 나라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른 어떤 단순한 원인보다 유교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은 불교 덕분에 미적 감각을 훌륭하게 발달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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