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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

이슬람과의 교역을 망친 세종

by afsefe 2023. 12. 17.

그당시 이슬람은 회회(回回)라고 칭했다. 고려말 이슬람과의 교역은 다들 잘 알거다. 실제로 보면 조선 초기까지 이슬람과 교역을 했다. 그러나 그 교역을 세종이 아작 냈다. 사학계에서도 세종의 이 정책을 철저히 비판하고 있다. 과연 조선이 고려를 본받아서 이슬람과 계속 교역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 4월 4일 임술 4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예조에서 사치한 폐백에 대해 계책을 올리다. 대조회 때 회회도 의식을 폐지하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회회교도(回回敎徒)는 의관(衣冠)이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보고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더불어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미 우리 나라 사람인 바에는 마땅히 우리 나라 의관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또 대조회(大朝會) 때 회회도(回回徒)의 기도(祈禱)하는 의식(儀式)도 폐지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111401032630000001

 

<박현모의 세종이 펼친 ‘진짜 정치’>“이슬람인과 풍속 마찰 걱정” 신하 건의에 설날 이슬람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즉 ‘불위(不爲)’의 측면에서 볼 때 세종의 또 다른 실책은 이슬람인(회회인·回回人)의 새해 인사를 금지시킨 일이다. 실록을 보면 세종 초반까지만 해도 왜인과 야

www.munhwa.com

- 기사 본문 마지막 줄 -

나는 세종 정부의 회회인 조회 배제 결정으로 싹튼 쇄국의 사고방식이 이선로의 주장으로 나타났고, 이후 몇 차례 큰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됐다고 본다. 만약 세종이 1427년에 예조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그래서 중앙아시아·서아시아와의 교류를 지속시켰더라면 어찌 됐을까? 세종의 그 수용이 일종의 나비효과를 불러왔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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