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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7

한국인들의 대표왕 세종 전국민 50% 노비로 만든 - 노예의 왕 중국에 극심한 사대를 한 - 사대주의 왕 신하들 부정부패 눈감아준 - 부패의 왕 중국에 여자 팔아먹는 - 창녀들의 왕 ​ 노예 , 사대 , 부패 , 창녀 - 이얼마나 한국에 딱맞는 단어들인가 부정부패 신하를 확실히 단속 했어야 하는데 왕부터가 저모양이니 이후에 양반들의 부정부패가 심각해 진거다. 부정부패 저지른 신하를 솜방망이 처벌이나 하고 다시 등용하니, 신하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 부정부패 저질러도 되겠구나 생각할게 아닌가, 최근에 삼성 총수 이재용, 박근혜, 이명박 부정부패를 저질렀지만 전부 손방망이 처벌 받고 나왔다. 그러나 이 시작을 보면 부패의 왕 세종 부터 였다. 정말 세종은 지금 한국에 딱맞는 왕이다. https://iece12345.tistory.. 2024. 1. 7.
조선 세종 중국사신 영접 절차 2 조선 영조 중국사신 영접 절차 https://iece12345.tistory.com/220 한국 최고의 위인 세종은 중국 황제의 조무라기 다. 세종이 뛰어나다고 해봐야 중국이란 우물안에서 하수인 이였다. 이런 잔챙이가 최고 위인이라니 한국 수준을 보여줄 뿐이다. 세종 3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1월 19일(갑자) 2번째기사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부절과 고서를 받다 명나라 황제는 대감(大監) 황엄(黃儼)을 보내어, 정사(正使) 광록 소경(光祿少卿) 한확(韓確), 부사(副使) 홍려시 승(鴻臚寺丞) 유천(劉泉)과 함께 부절(符節)과 고서(誥書)를 받들고 와서 왕명(王命)을 전달하게 되므로, 채붕(綵棚)을 매고 잡희(雜戲)를 베풀어 영접하였다. 임금은 편복을, 조신(朝臣)은 조복을.. 2023. 5. 24.
조선 중국사신 영접 절차 ※ 일성록 - 1752년(영조 28)부터 1910년까지 주로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기 ※ 모화관 - 중국 사신 영접하던곳 ※ 악차(幄次) - 임금쉬는 곳 ※ 연(輦) - 가마 ※ 인의(引儀) - 6품관직 ※ 사배례(四拜禮) - 네번절 국역 일성록[日省錄] 영조39년 계미(1763,건륭 28) 9월4일 (무오) 무오 상께서 모화관(慕華館)에 나아가 칙서(勅書)를 맞이하셨는데, 내가 따라가 참석하였다. ○ 그날 상께서 모화관에 도착하여 악차(幄次)에 들어가셨다. 내가 반열에 나아가고 종친과 문무백관이 각각 반열에 나아갔다. 칙서가 도착할 때가 되자, 내가 익선관(翼善冠)에 무양 흑단령포(無揚黑團領袍)와 청정 소옥대(靑鞓素玉帶)를 갖추고 지영위(祗迎位)에 나아갔고, 종친과 문무백관은 각각 흑단령(黑團.. 2023. 3. 3.
조선의 속국 의식 절차 세종 시기 실록 글인데 이글을 보면 조선에서는 중국 속국으로서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수있다. ※ 성절 - 황제의 탄신일 ※ 하례 -축하의 예식 ※ 의주 - 의식의 절차 세종 3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4월 16일(경인) 3번째기사 예조에서 성절 하례 때의 절하는 자세에 대해 아뢰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성절(聖節)에 대한 하례(賀禮)는 속국의 의주(儀注)에 의하면, 왼쪽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고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2023. 2. 17.
기자조선 계승국 한국 사학계에선 기자조선은 부정하고 있는데 정작 이성계의 조선은 기자조선을 계승했다. 이성계는 국호를 명태조에게 골라달라고 하고 조선후에 봉해졌다. 기자가 주무왕에 의해 제후로 봉해진것과 같다며 기자조선을 찬양하고, 기자조선을 이어받아 선정을 배풀겠다고 한다. 이나라의 정체성을 의심해 볼만하다. 정도전 (鄭道傳, 1342∼1398) 삼봉집 제13권 조선경국전 상(朝鮮經國典 上) 국호(國號) 해동(海東)은 그 국호가 일정하지 않았다. 조선(朝鮮)이라고 일컬은 이가 셋이 있었으니, 단군(檀君)ㆍ기자(箕子)ㆍ위만(衛滿)이 바로 그들이다. 박씨(朴氏)ㆍ석씨(昔氏)ㆍ김씨(金氏)가 서로 이어 신라(新羅)라고 일컬었으며, 온조(溫祚)는 앞서 백제(百濟)라고 일컫고, 진훤(甄萱)은 뒤에 후백제(後百濟)라고 일컬었다. .. 2022. 12. 31.
중국 속국의 현실 일본 종이가 좋으니 만드는 법을 배워오고, 일본에 금이 많이 생산된다고 하니 명주와 모시를 가주고 살수있으면 중국에 갖다 바치자고 한다. 전쟁 한번 못하고 저렇게 된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세종실록 41권, 세종 10년 7월 1일 신해 3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宣德) 3년 일본에서 《백편상서》를 사오게 하다 임금이 대언(代言) 등에게 말하기를, "일본국(日本國)에 《백편상서(百篇尙書)》가 있다고 들었는데, 통신사(通信使)로 하여금 사오도록 하고, 또 왜국의 종이는 단단하고 질기다 하니, 만드는 법도 배워 오도록 하라." 하니, 지신사(知申事) 정흠지(鄭欽之)가 계하기를, "일본국에는 금이 많이 생산되니, 명주와 모시[苧布]를 가지고 가서 사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중국.. 2022. 12. 31.
처녀를 바치는 조선 주원장이 조교를 얼마나 잘해놨는지, 전쟁한번 없이 이정도 효과를 냈다는 건 정말 대단한 황제다. 이게다 조선 이씨왕조는 정당성, 정통성 없는 왕조라서 그런거다. 금은 조공, 처녀 고자 조공, 말 조공등 명나라 요구를 전부 들어주며 무리수를 두고 구걸하듯이 책봉을 받으면, 명나라 제후라는 막강한 후원을 얻을수 있다. ※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 4월 16일 갑오 1번째기사 1408년 명 영락(永樂) 6년 흠차 내사 황엄·전가화 등이 명의 칙서를 가지고 오다. 은과 비단을 보낸다는 내용 조정(朝廷)의 내사(內史) 황엄(黃儼)·전가화(田嘉禾)·해수(海壽)·한첩목아(韓帖木兒)와 상보사 상보(尙寶司尙寶) 기원(奇原) 등이 오니, 산붕(山棚)을 만들고 나례(儺禮)와 백희(百戲)를 베풀고, 임금이 백관(百官)을 .. 2022.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