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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조선 중국사신 영접 절차

by afsefe 2023. 3. 3.

 

※ 일성록 - 1752년(영조 28)부터 1910년까지 주로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기

※ 모화관 - 중국 사신 영접하던곳

※ 악차(幄次) - 임금쉬는 곳

※ 연(輦) - 가마

※ 인의(引儀) - 6품관직

※ 사배례(四拜禮) - 네번절

국역 일성록[日省錄]

영조39년 계미(1763,건륭 28) 9월4일 (무오) 무오

상께서 모화관(慕華館)에 나아가 칙서(勅書)를 맞이하셨는데, 내가 따라가 참석하였다. 

○ 그날 상께서 모화관에 도착하여 악차(幄次)에 들어가셨다. 내가 반열에 나아가고 종친과 문무백관이 각각 반열에 나아갔다. 칙서가 도착할 때가 되자, 내가 익선관(翼善冠)에 무양 흑단령포(無揚黑團領袍)와 청정 소옥대(靑鞓素玉帶)를 갖추고 지영위(祗迎位)에 나아갔고, 종친과 문무백관은 각각 흑단령(黑團領)을 갖추고 지영위에 나아갔다. 상께서는 익선관에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지영위에 나아가셨다. 칙서가 도착하려고 하자, 상께서 몸을 굽히셨다. 나와 백관도 똑같이 하였다.

칙서를 실은 용정(龍亭)이 길에 오르자, 백관이 말을 타고 가고, 나도 말을 타고 갔다. 상께서는 연(輦)을 타고 가셨다. 흥화문(興化門) 밖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백관이 반열에 나아갔고 나도 반열에 나아갔다. 상께서는 지영위에 나아가셨다. 용정이 도착하려고 하자, 음악이 연주되었다. 상께서 몸을 굽히셨다가 용정이 지나가자 허리를 펴셨다. 나와 백관도 똑같이 하였다. 용정이 전(殿)에 오르자, 상께서 소차(小次)로 들어가셨다. 칙사(勅使)가 칙서를 받들어 책상에 안치하니, 음악이 그쳤다. 인의(引儀)의 인도로 칙사가 배위로 나아왔다. 상께서 소차에서 나와 배위로 나아가서 사배례(四拜禮)를 행하시니, 음악이 연주되었다가 그쳤다. 나와 백관도 똑같이 하였다. 찬례(贊禮)가 꿇어앉을 것을 계청(啓請)하니, 상께서 꿇어앉으셨다. 나와 백관도 꿇어앉았다. 사향(司香) 2인이 향안(香案)에 나아가서 세 번 향(香)을 올렸다. 상께서 부복하였다가 상체를 일으키고 일어서셨다. 나와 백관도 똑같이 하였다.

찬례의 인도로 상이 전내(殿內)의 수칙위(受勅位)로 나아가셨다. 칙사가 칙서가 있다고 하자, 상께서 꿇어앉으셨다. 나와 백관도 꿇어앉았다. 칙사가 칙서를 받들어 서쪽을 향하여 서서 전하니, 상께서 받아서 살펴보셨다. 근시(近侍)가 칙서를 책상에 도로 안치하였다. 승지가 세 번 춤을 추고 꿇어앉아 세 번 이마를 조아릴 것을 계청하자, 상께서 세 번 춤을 추시고 꿇어앉아 세 번 이마를 조아리셨다. 나와 백관도 똑같이 하였다. 상께서 전내에서 나와 전의 계단 위에 이르러 동쪽을 향해 서시니, 선칙관(宣勅官)이 전내로 나아가서 칙서를 받들고 나와 선독위(宣讀位)로 나아갔다. 인의의 인도로 칙사가 전의 계단 위에 이르렀다. 봉칙관(捧勅官)이 칙서를 받들어 선칙관에게 주니, 선칙관이 꿇어앉아 받아서 전칙관(展勅官)에게 주었다. 전칙관이 꿇어앉아 받고서는 일어서서 둘이 마주 보고 펼쳤다. 찬의(贊儀)가 꿇어앉을 것을 창(唱)하자, 나와 백관이 꿇어앉았다. 선칙관이 칙서를 읽었다. 봉칙관이 칙서를 받들어 책상에 도로 안치하였다. 찬의가 세 번 춤을 추고 꿇어앉아 세 번 이마를 조아릴 것을 창하자, 나와 백관이 똑같이 하였다.

인의의 인도로 칙사가 도로 들어가서 배위로 나아갔다. 상께서 내려와 배위로 돌아가셨다. 찬례가 세 번 춤을 추고 꿇어앉아 세 번 이마를 조아릴 것을 창하자, 상께서 세 번 춤을 추시고 꿇어앉아 세 번 이마를 조아리셨다. 나와 백관도 똑같이 하였다. 찬례가 산호(山呼)할 것을 계청하자, 상께서 손을 맞잡아 이마에 얹고서 ‘만세(萬歲)’라고 하셨다. 찬례가 산호할 것을 계청하자, ‘만세’라고 하셨다. 찬례가 재차 산호할 것을 계청하자, ‘만만세(萬萬歲)’라고 하셨다. 나와 백관도 똑같이 하였다. 찬례가 부복(俯伏)하였다가 상체를 일으켜 사배(四拜)할 것을 계청하자, 상께서 부복하였다가 상체를 일으켜 사배하시니, 음악이 연주되었다가 그쳤다. 찬례가 예(禮)가 끝났음을 아뢰었다.

인의의 인도로 칙사가 막차(幕次)로 나아갔다. 상께서 악차(幄次)로 들어가셨다. 내가 대내(大內)로 돌아왔다. 인의의 인도로 백관이 승문원으로 나갔다. 칙서를 받들어 용정에 담고서는 고악(鼓樂)이 전도(前導)하여 들어갔다. 칙사의 자리를 전내에 서쪽을 향하여 배설하고, 상의 자리를 전내에 동쪽을 향하여 배설하였다. 인의의 인도로 칙사가 배위로 나아가고 승지의 인도로 상이 배위로 나아갔다. 재배례(再拜禮)를 행하시고, 황제(皇帝)의 안부를 물으셨다. 칙사가 배설한 자리로 나아가고, 상께서도 배설한 자리로 나아가셨다. 다례(茶禮)를 끝마치자, 인의의 인도로 칙사가 나갔으며, 상께서는 대내로 돌아오셨다. 백관은 칙사를 따라 남별궁(南別宮)에 가서 차례로 재배례를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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