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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고려시대 충혜왕의 공장

by afsefe 2023. 4. 2.

한반도 중세시대에 100명 넘게 일했던 공장이 있었으니, 고려말 충혜왕의 신궁이다. 비단 제직 공장을 만들어서 여공 126명 일하게 했던게 중근세 시대 한반도에 있었던 유일한 공장이었다. 그외에는 조선에서 상공업을 억누르다 보니 가내수공업에서 발전을 못했다. 반면에 근세시대 일본에서는 수많은 공장이 만들어 졌다. 충혜왕의 신궁은 고려사 글로 보건데 비단 제직 공장이자, 정미공장으로 보여진다. 마지막에 궁인 126명을 추방했다고 하니 공장 여공은 126명일것이다. 충혜왕의 후비는 총 네명이다. 임씨는 마지막 네번째

 

※ 고려사

충혜왕(忠惠王) 후비

4. 은천옹주(銀川翁主) 임씨(林氏)

은천옹주(銀川翁主)임씨(林氏)는 상인 임신(林信)의 딸로 단양대군(丹陽大君)의 여종이었다. 사기그릇을 팔아 생계를 삼다가 왕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았다. 충혜왕 복위 3년(1342), 왕이 화비(和妃)를 들이려고 하자 임씨가 이를 시샘하기에 은천옹주로 봉하여 마음을 달랬는데 당시 사람들이 사기옹주(沙器翁主)라 불렀다.

왕이 삼현(三峴)에 신궁(新宮)을 세웠는데 그 제도가 왕궁과 같지 않았다. 창고 1백간에 곡식과 비단을 채워두고 행랑채에는 비단 짜는 여자를 두었다. 여자 2명이 뽑혀 신궁에 들어가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우니 왕이 노하여 쇠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또 방아와 맷돌을 많이 두었는데 이는 모두 옹주의 의견이었다. 왕이 양기를 돋우는 약을 즐기어 비빈(妃嬪)들이 모두 감당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옹주만이 총애를 얻었다.

석기(釋器)를 낳자 복연(福宴)을 열고는 상인들이 파는 비단을 빼앗아 예물로 삼았다. 충혜왕이 원나라로 잡혀갈 때 고용보(高龍普) 등이 왕의 내탕고(內帑庫)를 봉쇄하자 옹주가 “왕이 다만 예복만 입고 두터운 가죽옷을 입지 않았는데 지금 추위가 심하니 제발 왕에게 가죽옷을 드리게 하여 주시오.”라 울며 애원하니 고용보가 허락하였다. 고용보가 또 옹주 등 궁인 126명을 추방해 버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혜왕(忠惠王) 후비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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