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의 공장 https://iece12345.tistory.com/253
충혜왕은 시전에 점포를 차리고 상업을 적극 장려했던 왕임과 동시에 최고의 거상이었다. 조선시대 왕중에 충혜왕 만한 인물이 나왔다면 그렇게 미개하게 망하진 않았을거다. 충혜왕은 이미 한국 사학계에서 뛰어난 왕으로 재평가 받았는데, 일부 자극적인 내용 때문에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색마로 저평가 받고 있다. 역사라는건 그당시 사관이 어떻게 적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고려사 충혜왕 후3년(1342) 임오년
무오일. 왕이 의성창(義成倉)·덕천창(德泉倉)·보흥고(寶興庫)의 베 48,000필을 내어 저자에 점포를 열게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혜왕 후3년(1342) 임오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8.30, 경인문화사)
열게 했다 : 충혜왕은 보흥고(寶興庫)를 개인적으로 설치하는 등 왕의 재정기관을 확충하였다. 이에 충혜왕은 당시 유통경제가 발달한 것과 관련하여 시전에 점포를 차리고 도시상업에 적극 개입하여 경제기반을 확대시키기도 하였다. 특히 시전에 대한 강탈보다는 그들을 보호하고 상업을 적극 장려하여 그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혜왕 후3년(1342) 임오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8.30,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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