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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시대

원균의 오열

by afsefe 2023. 7. 23.

원균은 왜군이 온다고 하자 함선 다 태워먹고 도망갔지만, 솔직히 이순신 이라고 해도 다를건 없었다. 왜냐하면 이순신은 원균이 구원을 요청해도 한달 동안 꿈지럭 거리기만 하다. 정운이 칼을 빼들고 죽이려 들자 그제서야 출격해서 전투를 치른게 옥포해전이다. 그때는 왜군 상륙이 다 끝난 시점이었다. 일찌 감치 이순신이 출격을 했다면 왜군 절반은 막아낼수 있었다. 

 

※ 재조번방지 [再造藩邦志]

조선 중기의 학자 신경(申炅)이 임란전후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와 조선이 명나라의 후원으로 재조(再造)·재건된 사실을 적은 책.

재조번방지 2(再造藩邦志 二)

○ 이순신(李舜臣)도 가리포(加里浦)에서 전라도 좌수영(左水營)에 달려가서 군사를 훈련하고 병선을 정돈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적병이 이미 육지에 내려 여러 군(郡)이 모두 무너졌다는 소문을 듣고 별다른 계책이 나지 않으므로 노량(露梁) 어귀에 배를 배열하여 적의 오는 길목을 막고 성을 수축하여 지키고자 하다가 또 본도를 굳게 지켜 한산(閑山) 어귀를 엿보지 못하게 하려고도 하여 결정을 짓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순천 부사(順天府使) 권준(權俊)과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영담(魚泳潭)이 글을 띄워 일어나고, 또 자신이 달려와서 바다로 내려갈 계획을 힘껏 찬동하였다.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과 이순신의 군관(軍官) 송희립(宋希立)이 발분하여 죽음을 걸고 힘을 다할 것을 자원하며 강개한 언사로 이순신에게 말하기를,

“적이 이미 영남을 격파하고 승승장구하니 그 기세가 반드시 수륙으로 닥쳐올 것인데, 공은 어찌 이다지 신중하기만 하십니까? 공이 출전하시면 정운(鄭運) 등이 선봉으로 나가겠습니다.”

하였다. 이순신은 정운(鄭運) 등의 이와 같은 태도를 보고 크게 기뻐하여 5월 초 4일 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려면서도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경상 우수사 원균은 적의 세력이 큰 것을 보고서 감히 출격하지 못하고, 전선 백여 척 및 화포(火砲)와 군기를 바다 속에 다 던지고 수하의 비장(裨將) 이영남(李英男)ㆍ이운룡(李雲龍) 등을 거느리고 네 척의 배에 타고 곤양(昆陽) 해구(海口)로 가서 육지에 올라 적을 피하고자 하니, 수군 만여 명이 모두 흩어져서 수습할 수 없었다. 이영남(李英男)이 간언하기를,

“공이 왕명을 받아 수군절도사가 되었는데, 군사를 버리고 육지로 나갔다가 후일 조정에서 죄를 내릴 때 어떻게 해명하겠습니까? 전라도에 청병하여 적과 한번 싸워 이기지 못한 뒤에 도망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원균이 옳게 여기고 이영남(李英男)을 시켜 이순신에게 가서 청병을 하도록 하였다. 이순신은,

“각기 분계가 있는데 만약 조정의 명령이 없이 어찌 감히 마음대로 월경(越境)할 수 있겠는가.”

하고 사절하였다. 원균이 다시 이영남을 보내어 청하기를 무릇 오륙 차나 왕래를 하였다. 이영남이 다녀올 때마다 원균은 뱃머리에 앉아서 멀리 바라보며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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