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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공민왕이 그린 염제신 초상화

by afsefe 2023. 10. 7.

이그림을 소개한 이유는 공민왕이 그린 초상화다. 이색이 쓴글에서 이를 확인할수있다. 염제신 장례는 삼일장으로 치뤘고, 공민왕이 직접그렸다는 글은 밑에 글에 쓰여있다. 유교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인물이고, 오히려 문신 이지만 여러 전쟁터에서 활약 한걸로 보아 문무에 능했다는걸 알수있다. 고려시대를 보면 전쟁이 많다보니 이런 인물들이 많았다. 

염제신 1304∼1382

동문선 제119권 / 비명(碑銘)

고려국 충경공 염공신도비

이색(李穡)

지금 임금 9년 임술년 3월에 태평재상(太平宰相)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이 나이 79세로 병드니, 공경대부들이 날마다 문 앞에 와서 경과를 물었으며, 자손들이 마루에 가득하게 모여 탕약을 받들었고, 위와 아래에 기도하여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임금은 중관(中官)을 보내어 문병하고 약을 내리며 술을 내렸다. 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침내 효험이 없었다. 아, 그것은 명인 것이다. 공은 평소에 건강하여서 오래 앓는 일이 없었으며 늙을수록 신기(神氣)와 풍채는 더욱 뛰어났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향년함이 더욱 높을 것이라고 기필하였다. 그런데 이에 이르렀으니 명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공이 병이 들자 자제들에게 장사를 박(薄)하게 할 것을 훈계하여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죽은 뒤 3일 만에 매장하여 국가의 유사(有司)를 번거롭게 함이 없게 하여라.” 하였다. 부음이 알려지니 임금이 매우 슬퍼하였다. [중략]

신 색(穡)은 삼가 손을 마주잡고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명(銘)을 올린다. 명에 이르기를,

공의 나이 젊었을 때 / 公在妙齡

황제의 조정에서 높이 뛰어났고 / 敭翹帝庭

돌아와 정동성의 막료 중에 장이 되니 / 歸長省幕

다스림은 평온하고 백성들은 편안하였다 / 理靜民寧

다섯 임금의 조정을 차례로 섬기면서 / 歷事五朝

국가의 위령을 드높였다 / 敭國威靈

진정하면 무거움이 산악과 같고 / 鎭之山嶽

움직이면 뇌성처럼 위엄이 떨쳤네 / 動以雷霆

어려운 그때를 / 時之艱矣

공이 마침 만났는데 / 公乃適丁

삼군은 목숨을 바치고 / 三軍效命

온갖 법은 바로 섰다 / 百度惟貞

생민들은 양육하고 / 生民是育

종사는 호위하여 / 宗社是屛

바르게 하고 곧게 하며 / 以匡以直

기르고 편하게 하니 / 以毒以亭

여러 사람들의 병은 낫게 하고 / 衆病以痊

취한 자는 깨게 했네 / 群醉以醒

태평하게 된 것은 / 大平之目

신명이 들어준 것이네 / 神明所聽

착하신 공민왕이 / 於穆玄陵

그의 모습 친히 그리니 / 親圖其形

풍부한 공훈이며, 성대한 덕행이 / 豐功盛德

단청에 밝게 빛이 난다 / 煥乎丹靑

공은 진실로 원로이며 / 展也元老

온 나라의 모범이로다 / 一國儀刑

어찌하여 백세 향수 못하셨는가 / 胡不期頤

하늘과 땅이 아득하고 어둡구나 / 天地杳冥

높은 산과 낮은 늪은 끊은 듯 구획지고 / 有截原隰

냇물은 서늘하네 / 川流泠泠

산은 멈춰 서고 정기는 쌓여 있어 / 山止氣畜

분묘의 터전은 아름답구나 / 有美泉扄

비석이 우뚝 솟아 / 有突豐碑

위로 별에 이르네 / 上磨于星

천추에 와전 없이 / 千載勿訛

우리 동토에 비쳐 주리라 / 照我東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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