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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시대

진린장군의 노량해전

by afsefe 2023. 12. 25.

노량해전 명나라와 조선군 병력

 

그냥 명나라와 일본 싸움에 조선은 꼽사리 껴서 싸우다 새우등 터져 죽은거다, 노량해전은 중국 진린장군이 지휘한 해전 이었다, 이순신은 단지 중국인 진린장군 꼬붕이 노릇이나 하다 죽은거고, 그당시 조선 판옥선은 고작 60척 이었고, 일본은 400척, 명나라는 300척, 조선군은 7천명, 명나라군은 1만8천명 이었다, 어떻게 자국에서 싸우는데 중국군이 2배는 더 많았단 말인가, 그당시 수군 지휘권도 명나라에서 가주고 있어 이순신은 진린장군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노량해전에서 작전은 진린함대가 미끼역할을 하고 이순신과 등자룡이 좌우에서 협공하는 거였다. 조선에서는 이런 고난이도 병법을 몰랐기 때문에 노량해전 작전은 진린 장군 머리에서 나왔다. 또한 진린장군이 해전에서 쉽게 이길수 있었던 것은 왜군에는 대포가 없어 쉽게 이길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 선조실록 106권, 선조 31년 11월 27일 무신 5번째기사

순신이 진인(陳璘)에게 고하기를 ‘이는 반드시 구원병을 요청하려고 나간 왜적일 것이다. 나간 지가 벌써 4일이 되었으니 내일쯤은 많은 군사가 반드시 이를 것이다. 우리 군사가 먼저 나아가 맞이해 싸우면 아마도 성공할 것이다.’ 하니, 진인이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다가 순신이 눈물을 흘리며 굳이 청하자 진인이 허락하였다.

※ 선조실록 109권, 선조 32년 2월 7일 정사 1번째기사 /

진 도독의 관사에 거둥하여 접견례를 행하다

진인이 말하기를,

"한창 적이 포위해 올 때 내 배는 큰북을 치고 먼저 나아가고 등자룡(鄧子龍)과 이순신(李舜臣) 두 장수가 좌우에서 협공하였는데 그 두 장수는 다 적에게 죽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죽기를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동요하지 않아 다행히 패배를 면하였으니 이 또한 운수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순천(順天)의 적은 그 수효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하니, 진인이 말하기를,

"적은 2만여 명이 넘었으나 살아서 돌아간 것은 겨우 십여 명입니다. 적이 믿는 것은 조총이었는데 나는 구총(九銃)으로 그들 배를 때려 부쉈기 때문에 흉적이 당해 내지 못하여 패한 것입니다. 때마침 바람이 없어 추격하지 못한 것이 나는 아직도 유감입니다."

 

※ 임진왜란 육군 , 수군 지휘권

https://iece12345.tistory.com/507

 

※ 진법, 병서를 몰랐던 조선인들 

https://iece12345.tistory.com/360

   

         

노량해전 병력ff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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