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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고려의 일본정벌 당시 전함

by afsefe 2023. 12. 25.

※ 국역 고려사 

충렬왕 6년(1280) 

11월

기유일. 우승지(右承旨) 조인규(趙仁規)와 대장군 인후(印侯)를 원나라에 보내 중서성(中書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전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병선 9백 척, 뱃사공과 선원 15,000명, 정규군 1만 명 및 중국 단위로 계산해 군량 11만 석을 마련했으며 기타 군수물자도 셀 수 없을 만큼 갖추었으니 이제 있는 힘을 다해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려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렬왕 6년(1280) 경진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 8. 3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충렬왕 7년(1281)

6월

임신일. 김방경(金方慶) 등이 일본군과 싸워 3백여 명의 목을 베었다. 이튿날 다시 벌어진 전투에서는 홍다구의 군대가 패전했다. 범문호(范文虎)도 전함(戰艦) 3,500척으로 만군(蠻軍 : 남송군) 10여만 명을 거느리고 오다가 태풍을 만나 만군이 모두 익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렬왕 7년(1281) 신사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 8. 3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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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자력으로 여몽연합 당시 전선 900여척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씨조선은 어떤가, 이씨조선은 나라 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중국과 일본은 수백척의 전선을 운용하고도 남을 전력이 있는 수준이었지만, 조선은 전선이라곤 가장 많아봐야 칠천량 해전당시 120척이 고작이었다, 120척으로 무슨 나라를 지키냐, 칠천량 해전당시 왜선은 1천여척이 쳐들어 왔는데, 애초에 조선은 나라가 아니라 토인들이 국가 흉내를 낸거에 불과했다, 노량해전 당시는 고작 조선 판옥선은 60척이었고 명나라 전선은 300척이었다. 조선은 그냥 빈대에 불과하고 꼽사리 끼어 싸운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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