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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

뒷간 문자 - 훈민정음

by afsefe 2022. 12. 9.

마지막에 세종이 뒷간에서 막대기 가주고 배열해보다 문득 깨닫고 성삼문 등에게 창제하게 시켰다는데 , 세속에 전하기를 이라고 쓰여있는걸로 봐서 조선 후기에 보통 저렇게 알려져 있었나 보다

※청장관전서 [靑莊館全書]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의 저술 총서

청장관전서 제54권 / 앙엽기 1(盎葉記一)

훈민정음(訓民正音)

훈민정음에 초성(初聲)ㆍ종성(終聲)이 통용되는 8자는 다 고전(古篆)의 형상이다.

ㄱ 고문(古文)의 급(及)자에서 나온 것인데, 물건들이 서로 어울림을 형상한 것이다. ㆍㄴ 익(匿)자에서 나온 것인데, 은(隱)과 같이 읽는다. ㆍㄷ 물건을 담는 그릇 모양인데, 방(方)자와 같이 읽는다. ㆍㄹ 전서(篆書)의 기(己)자이다. ㆍㅁ 옛날의 위(圍)자이다. ㆍㅂ 전서의 구(口)자이다. ㆍㅅ 전서의 인(人)자이다. ㆍㅇ 옛날의 원(圜)자이다. ㆍㅣ 위아래로 통하는 것이니, 고(古)와 본(本)의 번절이다. 번절(翻切)ㆍ 세속에서는 언문(諺文)으로 반절(反切)이라 하여 반(反)자를 배반한다는 반(反)자로 읽고 반절(反切)의 반(反)자 음(音)이 번(翻)인 줄은 알지 못한다. 1행(行)에 각각 11자이다.

모두 14행(行)인데 글자를 좇아 횡(橫)으로 읽으면 가(可)ㆍ나(拿)ㆍ다(多)ㆍ라(羅)의 유(類)와 같다. 자연히 범주(梵呪)와 같은데 대체로 글자의 획은 전주(篆籒)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성인(聖人)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에 참여할 수 있었겠는가?

세속에 전하기를 “장헌대왕(莊憲大王 장헌은 세종대왕의 시호)이 일찍이 변소에서 막대기를 가지고 배열해 보다가 문득 깨닫고 성삼문(成三問) 등에게 명하여 창제(創製)하였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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