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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10

송도의 명소 장유대 바위 투성이 개울인 장유대는 개성의 유명한 곳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놀고있다. 조선인들이 유명 관장지에다 지 이름 새겨 넣는건 100년전 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조선인들은 500년 동안 아무것도 안했고 일제시대에도 아무것도 안한 반면, 외국인들은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7월>30일《금요일》무더위. 30일 《금요일》 무더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전 11시 50분 기차로 서울을 떠나 송도 집으로 왔다. 거의 오후 □시에 송도 집에 도착했다. 어린 장선이한테 약간 열이 있다. 내가 장유대(帳幽台) 개울이라고 이름붙인 바위투성이 개울은 송도의 명소 가운데 하나다. 계곡 사이를 흐르고 흘러서 해운대 개울.. 2023. 7. 26.
고려시대 신사(神祠) 남치근이 없애버린 신사들 https://iece12345.tistory.com/235 한국도 일본처럼 신토가 많이 발달했던 나라였으나, 조선시대 유생들이 다 불태워 버려서 전부 사라졌다. 대대적으로 없애버린 시점으로 보면 명종시대 다. 한국은 역사만 길뿐 유적같은 건 하나도 없는 나라다. 그말은 즉 조상들이 남겨놓은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고려도경 사우(祠宇) 동신사(東神祠) 동신사는 선인문(宣仁門) 안에 있다. 땅이 좀 편평하고 넓은데, 정전의 집이 낮고 누추하며 행랑과 월랑 30칸은 황량하게 수리하지 않은 채로 있다. 정전에는 ‘동신성모지당(東神聖母之堂)’이란 방이 붙어 있고 장막으로 가려 사람들이 신상(神像)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나무를 깎아 여인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2023. 5. 25.
개경 송악산의 자하동 고려시대 자하동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하동에서 고려 귀족들은 신선 처럼 살았다. 채홍철이 살던 중화당 이란 집은 과연 지금도 있을까 ★자하동 [紫霞洞 ] 개경(開京)의 송악산(松嶽山)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이름났던 곳이다. ★중화당 : 채홍철(蔡洪哲, 1262~1340)이 자하동에 지었던 집 이름이다. ★기영회 : 70세가 넘어 벼슬에서 물러난 정2품 이상의 문관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직한 모임 ★수장 : 장수(長壽)를 비는 술이다. ★희황 : 중국의 신화적 임금인 삼황(三皇)의 하나 ★자하 : 자줏빛 구름과 놀로 도가(道家)에서는 신선이 이것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국역 고려사 : 지 자하동 [紫霞洞 ] 집이 송악산의 자하동에 있는데 중화당(中和堂)은 구름과 안개.. 2023. 5. 2.
고려시대 식목 산업 조선시대 성복동 https://iece12345.tistory.com/213 한반도는 산지가 많은 만큼 잘 가꿔줬다면 아름다운 나라가 될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자연을 개선 하긴 커녕 파괴만 했다. 산이 민둥산 이어도 왜 나무 심을 생각을 안했을까, 500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어도 나무 심을 생각도 안하고 그저 어영부영 이나 했다. 구한말 때 보면 산이 전부 민둥산 이었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틀렸다. 개경 명산에서는 땔나무 벌목을 금지시키고, 고려 전지역에 나무를 심게 했다. 고려가 계속 지속 했다면 불교의 화려한 문화와 자연 친화력으로 한반도는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가 됐을까 국역 고려사 : 세가 정종 원년(1035) 을해년 여름 4월 갑인일. 국.. 2023. 4. 27.
조선시대 성복동 일제시대 화원 https://iece12345.tistory.com/174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윤치호는 조선에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 하고있다. 조선시대에 화원하나 없었던것만 봐도 알수있다. 조선반도는 산지가 일본만큼 많았던 나라 였다보니 조금만 꾸미면 아름다운 나라가 될수 있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3월 8일 《월요일》 어둑어둑하다가 오후에 맑음. 집에 있었다. 오후 5시에 성북동으로 산책 나가서 오후 7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500년 동안 일본인이나 미국인의 관리를 받았다면, 성북동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되었겠는가! 조선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개선하지 않은 채 방치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려왔다. 마을 주민들의.. 2023. 2. 21.
일제시대 화원(花園) ※ 고려시대 화원 https://iece12345.tistory.com/77 조선시대에는 화원(花園)이라는게 없었다. 재미있는건 고려시대에는 있었다. 이 차이점은 무엇때문일까, 종교 차이 때문이라고 윤치호는 말하고 있다. 조선은 유교때문에 조경에는 전혀 신경을 안썼고, 일본은 불교때문에 아름다운 미적 감각을 훌륭하게 발달 시켰다고 말한다. 실제로 몇 안남은 고려시대 문화제를 보면 아주 아름답다. 고려 청자 라든가 고려시대 검이라든가 말이다. ​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6월>2일《월요일》오전에 흐리다가 이른 오후부터 반가운 비가 내림. 2일 《월요일》 오전에 흐리다가 이른 오후부터 반가운 비가 내림. 오전에는 집에 있었다. 아침을 먹은 뒤 치창과 함께 용취.. 2023. 1. 19.
조선을 본 윌리엄 길모어 서양인교사 윌리엄 길모어 서울을 걷다 , 살림 출판사 14p-16p 무심한 여행자 에게 한반도는 일본 처럼 매력적 이지 않다. 여행자 들은 아름다운 삼나무 숲에 자리한 흥미로운 사원을 이나라에서는 발견하지 못할것이다. 멋진계곡에서 장관을 연출하는 신사도 없고 여행객이 머물고 싶게 유혹하는 숲도 거의 없다. 눈을 즐겁게 하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예술품 공방도 없다. 수도인근 지역의 숲은 벌거벗은 상태이다. 나무와 풀로된 망토가 벗겨져 버린 산은 작열하는 태양과 휩쓰는 빛줄기에 노출되어 있다. 산의 황량한 부분은 한여름 홍수가 만든 물길들로 골이 파이고 갈라져 있다. 해안을 따라 항해할 때도 일본의 내륙해를 지날때와 같은 세련되고 아름다운 광경은 보이지 않는다. 발랄한 상상력을 소유한 사람이나 강도짓이나 사.. 2023. 1. 7.
공민왕의 팔각전 ※동사강목 제15하 계축년 공민왕 22년(명 태조 홍무 6, 1373) 6월 ○ 이현(泥峴)에 화원(花園)을 만들고 2층으로 된 팔각전(八角殿)을 지었다. 주위에 빙 둘러 화훼(花卉)를 심어 연회하고 노는 곳으로 삼았다. ​ ​ 추강집 [秋江集] 조선 전기의 학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1454~1492)의 시문집 ※추강집 제6권 잡저(雜著) 송경록(松京錄) 화원(花園)을 방문하였다. 이른바 팔각전(八角殿)이라는 것은 옛터만 남아 있었다. 내가 10년 전에 이곳에 이르렀을 때는 팔각이 꺾이고 썩은 채로 철거되진 않았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었다. 팔각전 주춧돌 곁에 사람의 키만큼 자란 배나무가 있었다. 팔각전 북쪽 곁에는 쌓여 있는 옛 바위가 있고, 바위 위에 단풍나무가 있었다... 2022. 12. 19.
고려시대 검 유물명 - 금입사풀꽃무늬철검, 金入絲草花文鐵劍, Sword with Inlaid Floral Design, Iron 시대 - 고려시대, 10~14세기, Goryeo Period, 10th-14th c. A.D. 발굴 - 경기 개성 크기 - 41.0×4.3cm 재질 - 철 장르 - 철기 용도 - 군사 ​ 내용 금입사풀꽃무늬철검 철검의 칼몸 하단에 입사(入絲) 기법으로 풀꽃무늬[草花文]를 새겨 넣었다. 칼몸의 단면은 납작한 마름모꼴에 가깝고 표면은 정연하게 다듬어져 있다. 칼몸의 등날을 중심으로 도안화된 풀꽃무늬를 좌우대칭으로 새긴 후에 금실을 감입(嵌入)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 한국 기독교 박물관 http://www.ssu.ac.kr/web/museum/index 2022. 12. 17.
고려시대 - 최우(崔瑀)의 집 무신정권 최고수장 최우의 집은 어떠했을까 신선이 사는 집과 같았다. 지금 볼수있는 것은 저 청자뿐이다. 중반에 최우의 업적은 이런 좋은집을 짓고 살만하다는 글귀도 눈여겨 볼만하다. ​ ※최 승제(崔承制) : 최우(崔瑀)를 가리킨다. 승제(承制)는 승제상서(承制尙書)의 약칭으로, 임금의 제명(制命)을 받든 상서라는 뜻이다. ※甲第 [ 갑제 ] 크고 너르게 아주 잘 지은 집 ※揖讓 [ 읍양 ] 예를 다하여 사양(辭讓)함 積善 [ 적선 ] 착한 일을 여러 번 함 동국이상국전집 제24권 / 기(記) 최 승제(崔承制) 진강후(晉康侯)의 원사(元嗣)이다 의 십자각기(十字閣記) 승제상서(承制尙書) 최공(崔公)이 갑제(甲第)의 서쪽에 집을 세웠는데, 기이하여 실로 인간 세상에서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무릇 집을.. 2022.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