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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조선시대 성복동

by afsefe 2023. 2. 21.

일제시대 화원 https://iece12345.tistory.com/174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윤치호는 조선에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 하고있다. 조선시대에 화원하나 없었던것만 봐도 알수있다. 조선반도는 산지가 일본만큼 많았던 나라 였다보니 조금만 꾸미면 아름다운 나라가 될수 있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3월 

8일 《월요일》 어둑어둑하다가 오후에 맑음.

집에 있었다. 오후 5시에 성북동으로 산책 나가서 오후 7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500년 동안 일본인이나 미국인의 관리를 받았다면, 성북동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되었겠는가! 조선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개선하지 않은 채 방치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려왔다.

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은 세탁과 시골 저택지기 일이다. 돈이 필요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쉬운 방식을 택하게 된다. 전혀 노력하거나 노동할 필요가 없는 방식, 즉 자신의 집을 저당 잡히는 것이다.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유교식 경세지책(經世之策)은 얼마나 잔인한가. 그것은 조선인들이 갖고 있는 고상한 충동을 모두 박멸했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기생하는 습관을 발달시켰다. 관직을 갖고자 하는 열망은 거의 교묘하게 위장된 기생성일 뿐이다.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브로크만 씨 댁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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