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보(高麗堡)는 병자호란 당시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들 마을이다.
심전고 [心田稿] 조선 순조 때 박사호(朴思浩)가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쓴 사행일기(使行日記)
※ 심전고 제1권
연계기정(燕薊紀程) ○ 무자년(1828, 순조 28) 12월 21일
맑음. 사류하(沙流河) 40리를 가서 점심 먹고, 옥전현(玉田縣) 40리를 가서 잤다.
환향하(還鄕河)는 물이 자못 넓다. 풍윤, 옥전을 지나 운하(運河)를 거쳐 바다로 들어간다. 무릇, 강물은 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 강물만은 유독 서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환향하’라 일컫는다. 옛날, 송 휘종(宋徽宗)이 이 하수의 다리를 지나다가 말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보며,
“이곳을 지나면 큰 사막이 점점 가까워지니 내 어찌 이 물과 같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요.” 하고, 음식도 먹지 않고 갔다. 후인이 이에 그 다리를 이름하여 ‘사향(思鄕)’이라 하였다. 고려보(高麗堡)는 대개 병자, 정축 연간(병자호란 때)에 잡혀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자손들이 가문을 이루고 있다. 일찍이 이 고장에 마을이 있어 거의 100여 호가 되었는데, 매일 우리나라 사행 때마다 그 근파(根派)를 캐어 묻는 일이 많았고, 캐어 물으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하기 곤란해 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지금은 다 두어 마장[數帿]되는 곳으로 이주하여 이 마을은 전에 비하여 매우 쓸쓸해졌다고 한다.
압록강을 건너서 여기까지 수천 리에 이르는 사이에 처음으로 논 수백 묘(畝)가 있는데, 다만 땅이 질어서 물갈이에 적당할 뿐만 아니라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남긴 풍속이라 하겠다. 저자에 밤절편[栗切餅], 송편[松餅] 따위가 있어 사람들이 고려떡이라고 부르는데 이것 역시 떡장수들이 우리나라 떡을 본따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사 먹으므로 사행이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떡함지를 끼고 길에 나와 앞을 다투어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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