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관전서 [靑莊館全書]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의 저술 총서
청장관전서 제33권 / 청비록 2(淸脾錄二)
시기(詩妓)
고려 때 용성(龍城)의 창기(娼妓) 우돌(于咄)과 팽원(彭原)의 창기 동인홍(動人紅)은 다 시를 잘 지었는데도 전하지 않는다. 본조(本朝)의 송도(松都) 기생 황진(黃眞 황진이(黃眞伊))은 매우 절색(絶色)에다 시도 잘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화담 선생(花潭先生 화담은 서경덕(徐敬德)의 호) 및 박연폭포(朴淵瀑布)가 나와 함께 송도의 삼절(三絶)이다.”
하였다. 그녀가 어느 날 땅거미가 질 때 비를 피하려 어느 선비의 집을 찾아들었더니, 그 선비가 환히 밝은 등불 밑에서 그녀의 너무도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는 마음속으로 도깨비나 여우의 넋이 아닌가 하고 단정히 앉아 《옥추경(玉樞經)》을 끊일 새 없이 외어대었다. 황 진은 그를 힐끗 돌아보고 속으로 웃었다. 닭이 울고 비가 개자 황진이 그 선비를 조롱하여,
“그대 또한 귀가 있으니 이 세상에 천하 명기 황진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거요, 바로 내가 황진이라오.”
하고는 뿌리치고 일어나니, 그 선비는 그제야 뉘우치고 한탄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황 진이 송도에서 지은 시에,
눈 달은 전조의 빛이요 / 雪月前朝色
찬 종은 고국의 소리로세 / 寒鍾故國聲
남루는 시름겹게 홀로 섰고 / 南樓愁獨立
성곽엔 저문 연기 이누나 / 城郭暮烟生
하였는데, 어떤이는 말하기를, “이는 초루(草樓) 권겹(權韐)의 시이다.”
하였다. 또 추향(秋香)과 취선(翠仙)이라는 기생도 다 시를 잘하였다. 취선의 호는 설죽(雪竹)인데, 그의 ‘백마강회고(白馬江懷古)’시에,
저물녘에 고란사에 닿아 / 晩泊皐蘭寺
서풍에 홀로 다락에 기대섰네 / 西風獨倚樓
용은 간데없이 강만이 만고를 흐르고 / 龍亡江萬古
꽃은 지고 없는데 달은 천추를 비추누나 / 花落月千秋
하였고, ‘춘장(春粧)’시에는,
봄 단장 서둘러 끝내고 거문고에 기대니 / 春粧催罷倚焦桐
주렴에 붉은 햇살 가벼이 차오르네 / 珠箔輕盈日上紅
밤안개 짙은 끝에 아침 이슬 흠뻑 내려 / 香霧夜多朝露重
동쪽 담장 아래 해당화가 눈물 흘리네 / 海棠花泣小墻東
하였다. 동양위(東陽尉 부마(駙馬) 신익성(申翊聖)을 말한다)의 궁비(宮婢)도 시를 잘하였는데, 그의 시에,
떨어진 잎새는 바람 앞에 속삭이고 / 落葉風前語
찬 꽃은 비 뒤에 눈물 짓네 / 寒花雨後啼
오늘밤을 상사몽으로 지새노라니 / 相思今夜夢
작은 다락 서녘에 달빛이 하얗구려 / 月白小樓西
하였다. 최기남(崔奇男)의 호는 귀곡(龜谷)인데 동양위의 궁노(宮奴)이다.
그 역시 시집(詩集)이 있는데, 그의 ‘한식도중(寒食途中)’시에,
동녘 바람 보슬비에 긴 둑 지나노니 / 東風小雨過長堤
풀빛에 내가 섞여 시야가 흐릿하구나 / 草色和煙望欲迷
한식이라 북망산 아래 길목에 / 寒食北邙山下路
들 까마귀 백양나무에 앉아 우네 / 野烏飛上白楊啼
하였다. 동양위의 부자ㆍ형제ㆍ조손 간이 다 문재(文才)와 인품이 뛰어나 재상 자질에 손색이 없었는데, 그의 노비(奴婢)들까지도 화조(花鳥)를 능란히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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