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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조선의 가짜 양반들

by afsefe 2023. 2. 1.

원래는 양반 후손이라해도 3대까지 관직에 오르지 못하면 양민으로 강등됐는데, 조선후기에 보면 조상중 한명만 양반이 있으면 이놈이건 저놈이건 양반행세를 할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 후기에 양민 이나 노비들이 공명첩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해서 양반행세를 하고 다녔다. 단순히 직위만 얻는게 아니고 양반이면 군역이 없다. 이런걸 빌미로 해서 조정쪽에선 궁핍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 가짜 관직 임명장인 공명첩을 마구 뿌려대기도 했다.

 

※청성잡기 [靑城雜記] 조선 후기 학자 성대중(成大中:1732∼1812)의 잡록집

청성잡기 제4권 성언(醒言)

양반에게 소작을 주지 않는 이유

영남에서 소작을 주는 지주들은 ‘세 가지 주지 말 것〔三不給〕’으로 서로를 경계하니, 노비에게 주지 말 것, 친구에게 주지 말 것, 흑립(黑笠)에게 주지 말 것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양반은 모두 흑립을 쓰고 일반 백성은 대체로 전립(氈笠)을 쓰므로 흑립은 양반을 지칭한다. 양반이라는 호칭은 고려 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서신에 나오는 ‘진짜 양반〔眞兩班〕’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양반이라고 하는 것은 동반(東班 문반(文班))과 서반(西班 무반(武班))의 정직(正職)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지금의 양반은 관직이 있건 없건 통틀어 양반이라고 하니, 양반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괜찮으나 양반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참람한 일이다. 지금은 양반이 온 나라에 깔려 있으니, 음직도 조상의 공업(功業)도 다 끝나고 토지도 노예도 없으며 문(文)도 무(武)도 익히지 않아 모습과 언동이 평민만도 못한 주제에 그래도 조상의 훌륭한 유업을 들먹이며 남에게 사역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한갓 남의 땅을 움켜쥐고서 이름만 소작일 뿐이지 자기는 쟁기질도 호미질도 제대로 않고 평민들을 부리려 드니, 평민들이 그 말을 듣겠는가. 이 때문에 농사일에 번번이 때를 놓쳐 땅 주인만 피해를 입게 되며, 땅 주인이 조금이라도 책망하면 마구 욕을 해대고 그나마 소출도 다 주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땅 주인이 땅을 빼앗지 않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으면 팔아야 하는데 팔려고 하면 틀림없이 빼앗기게 된다. 이래서 서로 땅을 주지 말라고 경계하는 것이니, 흑립을 쓴 양반들이 어찌 더욱 빈궁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D-001]진짜 양반〔眞兩班〕 : 이 말은 《포은집(圃隱集)》 권3 답둔촌서(答遁村書)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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