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맹률은 99% 였다. 한글조차도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양반층 일부에서나 쓰였던게 한글이다. 윤치호의 하인만 봐도 잘보여준다. 일제시대 에서는 문맹률이 78% 였다.
9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9(한국사료총서 번역서9) >1935년(을해년)>4월>17일《수요일》 사랑스런 날.
17일《수요일》 사랑스런 날.
서울 집.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하인을 과천에서 데려오고 있는데, 그들이 더 남쪽에서 오는 아이들보다는 좀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충분히 멍청한 면이 있다. 처음 왔을 때는 고분고분하고 부지런하지만 곧 비난을 받게 된다. 그 후에 게을러지게 된다. 종종 믿을만한 사람도 그렇다. 그들이 갖고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은 돈 문제에서 너무 무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글 언문조차도 배우려는 의욕이 보이질 않는다. 그들은 생각이 없는 듯하다.
'윤치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부사와 에이이치 기념식 (0) | 2023.01.28 |
---|---|
황제가 된 고종 (0) | 2023.01.27 |
구한말 종말의 왕조 (1) | 2023.01.25 |
고종의 죽음에 울부짖는 조선인들 (0) | 2023.01.24 |
조선 말기 상황 (0) | 2023.0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