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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구한말 종말의 왕조

by afsefe 2023. 1. 25.

마지막 후반부는 고종을 가리키는 거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1904년(조선개국 513년,광무8년, 갑진년)>7월 

31일

6시 30분 집에서 출발해서 아버님께서 휴양하러 가 계시는 승가사(僧伽寺)로 향했다. 인력거가 최대한 갈 수 있는 곳은 북대문 산 초입이었다. 산 초입부터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평지부터 언덕 정상까지 가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오전 9시 30분에 승가사는 여전히 안개로 덮여 있었다. 사찰이 자리 잡은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니 서울과 굽이쳐 흐르는 강은 거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동굴에서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버님과 우리 아이들은 모두 건강했고, 신선한 공기와 물을 만끽하는 것 같았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0년 내지 50년 전 산에는 길을 따라, 그리고 사찰 주위가 온통 거대한 나무들로 울창해서 여름에는 나무에 가려 하늘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제 나무는 없다. 수많은 산비탈 어디에서도 나무는 완전히 사라졌다. 모든 것이 헐벗고 척박해졌다. 지금 마을주민과 승려들이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나무뿌리를 뽑고 뽑고 또 뽑는다. 따라서 숲을 다시 가꾼다는 희망은 사라졌다. 최고 자리에 있는 나쁜 인간 한 명이 안겨주는 폐해가 나무뿌리만큼이나 깊다.

며칠 전 이상재(李商在)씨를 방문했다. 그를 보니 몹시 반가웠다. 그는 예전처럼 건강하고 쾌활했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 있는 동안 교회 신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주님께서 이씨 왕가에서 비열한 인간 하나를 키우셨고, 조선의 역대 왕 28명이 저지른 모든 죄의 벌을 주기 위해 그에게 긴 통치 기간을 주었다고 했다.

승가사 註 040 : 삼각산 승가사.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절.

註 041 : 이상재(1850~1927)는 1896년 서재필·윤치호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만민공동회 의장을 지내다가 1898년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낙향했다. 1902년 6월 국체개혁을 음모했다는 ‘개혁당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1904년 석방되었다. 구금되어 있을 때,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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