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때 보면 고려도적들이 많이 활개쳤다. 재밌는 점은 중국 해안까지 진출 했었다는 거다. 이글을 분석해 보면 처음 두번째줄 "그안에" 와 첫문단 마지막 번째줄 "하였으니, 신은 억울해 견딜 수 없습니다." 는 이성계가 한말이다. 그 중간은 전부 명태조 주원장이 한말이다. 즉 이성계가 명나라 사신 황영기가 준 주원장의 글을 보고 혼자서 변명을 하는거다. 물론 조선에서 명황제에게 보낸 글에 다있을거다. 주원장이 한말을 보면 조선 도적들이 중국 해안까지 와서 중국인들을 죽이고 약탈했으며 정탐까지 했다는것이다. 고려도적들이 이미 대선박을 이용해 활개 쳤다는것을 알수있다. 최영의 홍산대첩이나, 이성계의 황산대첩 등도 일본 쪽에선 고려도적들이 소행이라고 보고있다. 솔직히 그 내용들을 보면 왜구가 아니라는 힌트들이 몇몇 있다. 그 내용은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자. 이 실록의 두번째 문단글은 아니라는 변명글이 쓰여있지만 이성계가 중요한 말실수를 했다. 그 말실수는 이성계도 몰랐으며 그 당시 조선인들도 몰랐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말들이 종종 있다. 이당시 이성계의 심정은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 그 내용도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자
☆ 황영기(黃永奇) - 명나라 사신
☆ 주본奏本 - 중국 임금에게 올리는 글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6월 16일 갑신 1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태조의 선대 종계를 변무하고 정탐군을 보낸 적이 없음을 말한 주본
사신 황영기(黃永奇) 등이 돌아갔다. 왕이 주본(奏本) 한 통을 지어서 부치고 영빈관(迎賓館)까지 나가 전별하였는데, 그 주본에 말하였다.
"홍무(洪武) 27년 4월 25일에 칙사로 보낸 내사(內史) 황영기 등이 와서 삼가 해악산천(海岳山川) 등의 신령에게 고제(告祭)하는 축문을 받들어 보니, 그 안에, ‘옛날 고려 배신 이인임(李仁任)의 후사 이성계(李成桂)의 지금 이름 이단(李旦)이 혹은 공공연하게 사람을 보내서 정탐하기도 하고, 혹은 비밀히 사람을 보내서 탐정하여 우리들의 변방 장수를 유인도 하고 바닷가의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기도 하며, 또 유인하여 나쁜 일을 하게 한다. 이와 같이 화(禍)를 만들고 있으므로 즉시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묻고자 하나, 큰 군사가 국경에 들어가면 살상이 많을 것이므로 아직 경솔히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또 고려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쪽만 산을 지고 있어 지방이 수천 리나 되고 주위가 험하고 막혀서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요새지이다. 그 속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황제의 명령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인데, 이번에 이단의 하는 것을 보니,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서 백성들을 다스릴 자가 못된 것 같다. 내가 상제에게 밝히 고하고자 하나 쓸데없이 상제의 들음만 번거롭게 할 것 같아서, 이제 사람을 보내서 먼저 신(神)에게 고하노니, 오직 신령은 그 까닭을 살피고 상제에게 고하라. 그래도 저들이 멋대로 모멸(侮蔑)하여 말지 않으면 정토군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으니, 신은 억울해 견딜 수 없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신의 선대는 본래 조선의 후예이며, 신의 22대조 이한(李翰)은 신라 시대에 사공(司空) 벼슬을 했고, 신라가 망한 뒤에는 한의 6대손인 이긍휴(李兢休)는 고려 조정에 들어왔고, 긍휴의 13대손 이안사(李安社)는 이전 원(元)나라에 벼슬을 했습니다. 이가 신의 고조부로서 그 뒤로부터는 고려의 관작을 받지 못하였고, 원나라 말기에 와서 전쟁이 일어나자 신의 아비 이자춘(李子春)이 신 등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피난왔습니다. 신이 무재(武才)를 약간 배웠다 해서 군대에 몸을 두었으나 신은 벼슬이 아직 현달하지 못했고,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죽은 뒤로부터 가짜 왕씨인 신우(辛禑)에 이르기까지 16년 간에 권신 이인임(李仁任)·임견미(林堅味)·염흥방(廉興邦) 등이 서로 이어가면서 권력을 잡아,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치고 죄와 악이 꽉 차서 스스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신은 본마음이 근신하고 다른 허물이 없으므로, 신을 문하 시중(門下侍中)으로 거용한 것입니다. 〈신이〉 국정에 간여할 때 앞 사건의 사리에 대하여 이미 주본을 갖추어서 주달한 바로서 신과 인임은 본래 같은 이씨가 아닙니다. 신이 국정을 맡은 뒤부터 인임이 저지른 불법을 모두 다 바루려 하다가, 도리어 그 당류의 미움을 받아서 윤이(尹彝)와 이초(李初)가 귀국에 도망하여 함부로 거짓말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윤이와 이초는〉 폐하의 명찰하심을 힘입어 이미 처형되었으나, 그래도 그 당류들이 도성과 외방에 잠복하여 신의 하는 바를 시기하며 지금까지 떠들어 말지 않는 것입니다. 신은 또 생각하건대, 하늘이나 사람이나 윗사람이나 아랫사람들이나 다 한가지 이치로 통달하게 되며, 폐하의 마음이 곧 상제의 마음인 것입니다. 신은 폐하의 은덕을 입고 폐하의 신하가 되었는데 공공연하게 사람을 보내서 정탐하거나 혹은 비밀히 정찰하여, 변방 장수를 유인하며 주민을 죽이고 약탈하는 것은 죄가 매우 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일이 없다고 하면 이것은 임금을 속이는 것이며, 신하의 죄는 임금을 속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문명한 세상에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임금을 속였다면 이는 하늘을 속이는 것이며, 사람의 죄는 하늘을 속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천지간에 용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산천귀신이 좌우에 벌려 있는데 만약에 하늘을 속이고 임금을 속이는 죄가 있다면, 어찌 신의 죄를 상제에게 고하고 신의 몸에 화(禍)를 내리지 않았겠습니까? 신은 황공하고 떨리는 마음을 이길 수 없어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말씀드리오니, 성스럽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아랫사람을 애긍(哀矜)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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