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에 부엉이 라고치면 많이 나오지만 왕별로 하나씩만 축약했다. 부엉이가 울었을 경우 궁궐을 떠나거나 중들을 모아서 빌거나 해괴제를 지냈다. 그러다가 세조시절 부엉이가 울어도 아뢰지 말라고 일렀다. 세조시대 이후로는 부엉이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 해괴제(解怪祭) - 나라에서 괴이한 사건이 생겼을 때에 지내던 제사.
※ 기양(祈禳) - 재앙(災殃)은 물러가고 복(福)이 오라고 비는 일.
태조실록 15권, 태조 7년 9월 10일 임오 1번째기사 / 밤에 부엉이가 경복궁 북원에서 울다
밤에 부엉이가 경복궁(景福宮) 북원(北園)에서 울므로, 상왕(上王)이 북쪽 양정(涼亭)으로 옮겨 가서 거처하였다.
정종실록 2권, 정종 1년 8월 15일 임자 1번째기사 /
부엉이가 솔개에 쫓겨 근정전 위에 와서 모이자 중들을 모아서 기양(祈禳)하였다.
태종실록 21권, 태종 11년 2월 16일 정미 1번째기사
부엉이[鵂鶹]가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에서 우니, 해괴제(解怪祭)를 행하라고 명하였다.
세종실록 73권, 세종 18년 윤6월 5일 기사 2번째기사
부엉이[鵂鶹]가 근정전에서 울므로 해괴제(解怪祭)를 행하였다.
세조실록 3권, 세조 2년 1월 9일 기묘 1번째기사
서운관(書雲觀)에서 아뢰기를, "이달 초7일 밤에 부엉이[鵂鶹]가 홍례문(弘禮門) 서루(西樓)에서 울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금후로는 만약 부엉이기 울어도 아뢰지 말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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