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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광무태황제를 추억하며

by afsefe 2023. 7. 2.

이글을 통해 조선 이란 나라가 얼마나 지옥같은 나라였는지 잘 알수 있을것이다. 

근데 읽어보면 구한말만 이랬던건 아니다. 도적이야 조선 500년 내내 들끓었고 수탈도 심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0월>29일 금요일 화창한 날씨.

29일 《금요일》 화창한 날씨.

 

기침이 낫지 않아 여전히 누워 있다. 때때로 광무태황제가 지난 14년 동안 황제자리에 있었더라면 조선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조선인들은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재미있어진다.

 

1.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광무태황제의 궁궐과 조정은 이용익(李容翊)·이지용(李址鎔)·민영철(閔泳喆) 같은 가장 야비하고 잔인하고 가증스런 악당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2. 전국에 도적과 노상강도가 들끓어서 어디에서도 인명과 재산이 안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3. 도지사·군수·군인·경찰의 수탈과 만행이 도적과 노상강도들의 수탈과 만행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4. 미국인·일본인·프랑스인·러시아인 등 외국인 투기꾼들이 광산·산림·어장 등 온갖 종류의 천연자원을 양도라는 미명 하에 장악했을 것이다. 관세·세입 등 값어치를 갖는 것은 모두 황제와 황제의 더러운 앞잡이들에게 가장 많은 뇌물을 바치는 일당에게 저당 잡혔을 것이다.

 

5. 일본은 좀 더 제대로 된 정부를 수립하려는 혁명운동을 진압하려고 특별히 신경을 썼을 것이다. 광무태황제가 지난 15년 동안 권력을 남용했더라면, 조선은 조선인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조국이 되었을까?

 

註 126

: 이용익(1854~1907)은 보부상 출신의 한말 정치가로 황실 재정을 담당했다. 국가 재정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정책을 주도했고, 개혁당을 조직해 친일파와 맞섰다. 보성학원을 설립했고, 해외에서 구국운동을 펼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망했다.

 

註 127

: 이지용(1870~1928)은 흥선대원군의 형인 이최응의 손자로 ‘을사5적’의 하나다. 1907년 5월 중추원고문에 임명되었고, 1910년 일본정부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에 임명되었다.

 

註 128

: 민영철(1864~?)은 민영환의 6촌으로 한성부의 좌·우윤을 지냈고, 예조·호조·형조의 참판을 역임한 뒤 1895년 궁내부특진관에 제수되었다. 1901년 회계검사총장과 비서원경을 겸했고, 1902년 군부대신이 되었으며, 그 뒤 육군부장·군무총장·철로총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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