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양무 묘지라고 되어있는 건 조선왕조 500년동안 방치되다가 고종이 만든거다. 이게 진짜 였으면 500년동안 방치될리 없겠지, 사연은 이러하다. 이씨왕조 족보 선원 선계에 이양무 묘는 삼척 서쪽 노동에 있고, 부인의 묘는 삼척 서쪽 동산지리에 있다. 라고 쓰여있다. 그래서 성종 시절 부터 여러차례 묘를 찾을려고 노력했으나 헛수고 였고 특정 할수가 없었다. 그러던중 고종시절 나라 다 망해가는 대한제국 광무 시점에 그냥 저걸로 해라 해서 저렇게 꾸며놓은 거다. 이색이 지은 태조 선묘기에 동북면에 있는 4대조 목조ㆍ익조ㆍ도조ㆍ환조 4조 묘지 외에는 모두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나와있다.
※ 고종실록 39권, 고종 36년 5월 25일 양력 2번째기사 1899년 대한 광무(光武) 3년
삼척의 노동과 동산 두 무덤의 이름을 준경, 영경이라고 하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삼척(三陟)의 노동(蘆洞)과 동산(東山)에 있는 두 묘소는 이미 《선원보략(璿源譜略)》에 실려 있다. 이에 우리 열성조(列聖朝)께서도 일찍이 다시 봉축하는 것에 관해 의논한 일이 많아 여러 차례 봉심(奉審)하라는 명이 있었다. 지금 봉심한 재신(宰臣)이 아뢴 것을 보니 《여지승람(輿地勝覽)》과 《읍지(邑誌)》에도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묘의(墓儀)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거행하지 못하였으니 선조를 추모하는 마음이 또 어떠하겠는가?
옛날부터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은 마치 오늘을 기다린 것 같다. 선조의 뜻을 계승하고 선조의 사업을 이어나감에는 마땅히 인정과 예의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노동의 묘호(墓號)는 ‘준경(濬慶)’이라 하고, 동산의 묘호는 ‘영경(永慶)’이라 할 것이다. 봉역(封域)을 한정하고 비를 세우며 관원을 두고 재실을 세우는 등의 절차는 조경단 영건청(肇慶壇營建廳)에서 모두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준경묘(濬慶墓)와 영경묘(永慶墓) 두 묘소의 비석 앞면 글은 내가 직접 쓰고, 음기(陰記)도 직접 지어 내리겠다." 하였다. 또 조령을 내리기를,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 이중하(李重夏)를 영건청 당상(營建廳堂上)으로, 삼척 군수(三陟郡守) 이구영(李龜榮)을 낭청(郎廳)으로 다같이 차하(差下)하여, 급히 준경묘와 영경묘로 달려가서 감동(監董)하도록 하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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