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관(伶官) - 음악담당 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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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녕熙寧] 9년 A.D.1076; 고려 문종(高麗 文宗)에 또 최사훈(崔思訓)을 보내 오자, 중귀인(中貴人)에게 명하여 도정(都亭)·서역(西驛)의 예(例)에 따라 객관(客館)을 수리하여 고려(高麗)사신들을 더욱 후하게 대우하도록 하니, 사신으로 오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고려(高麗)에서 일찍이 영관(伶官)10여명을 바치면서,“고려(高麗)음악이 보잘 것은 없지만, 다만 국사(國史)를 빛내려고 한 것 뿐입니다.”하였다. 황제(皇帝)는 고려(高麗)가 글을 숭상하는 까닭으로,조서(詔書)를 내릴 때마다 꼭 문학(文學)에 종사하는 신하들을 뽑아 조서(詔書)를 짓도록 하여 그 중에서 우수 작품을 가려 사용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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