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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김종직 고려를 말하다

by afsefe 2022. 12. 19.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시문집

점필재집 문집 제2권 발(跋) 송도록에 대한 발[跋松都錄] 

고려(高麗)는 송악(松嶽)에 도읍하여 거의 5백 년이 지나서 망하였다. 그런데 그 전성 시대에는 군신(君臣)이 서로 화합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하였으니, 오직 성지(城池)나 관궐(觀闕)[궁궐]만 위엄을 보임이 중하고 유관(遊觀)[구경함]에 제공됨이 풍부했을 뿐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경대부(公卿大夫)[벼슬아치]나 호민부상(豪民富商)[부자상인]들의 원지(園池)[정원과연못]와 제택(第宅)[정자와저택]들은 자하동(紫霞洞)을 에워싸고 남산(男山)을 임하여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게다가 승사(僧舍)[사찰]와 탑묘(塔廟)들이 기려(奇麗)[뛰어나게 아름다움]함을 서로 다투어 금벽색(金碧色)의 고운 단청이 서로 휘황찬란하였다.

그러다가 우리 태조(太祖)가 일어나서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고 나자, 수년도 안 되어서 왕씨(王氏)들의 겹겹으로 경영(經營)해 놓은, 높은 대사(臺榭)와 깊은 오지(汚池)들이 쓸어버린 듯이 다 없어져서, 동타(銅駝)가 가시덤불 속에 묻히고 서리(黍離)가 눈에 그득한 것이 지금까지 80여 년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 유민(遺民)으로서 그 당시에 어렸던 사람들은 이제 늙어 꼬부라졌고, 당시에 장성했던 사람들은 벌써 묘목(墓木)이 한 아름이 되었으니, 또 누구에게서 그 지난날의 번화했던 시절을 고증할 수 있겠는가. 대아(大雅)에 이르기를,

“은(殷) 나라가 거울로 삼을 것은 멀지 않아서, 하후(夏后)의 세대에 있다.”

하였는데, 쌓는 것은 5백 년을 쌓아도 부족하였고, 허무는 것은 하루에도 헐고 남음이 있었으니, 아, 왕씨(王氏)의 도읍은 바로 오늘에 있어 은 나라의 거울이라고 이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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